경제·금융

[국가R&D전략 다시짜자] 1. 선택과 집중

정부가 민간기업이 미처 투자하기 어려운 분야를 중심으로 연구개발(R&D)사업을 추진해 온 것은 지난 70대부터다. 이 같은 노력에 힘입어 우리는 R&D 투자규모로는 세계 10위권 국가로 올라섰다. 하지만 이 같은 투자규모를 미국 등 선진국과 비교하면 `새 발의 피`수준이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에 따르면 지난 2001년 우리의 R&D 투자(정부 및 민간합계)규모는 125억달러로 미국의 2,653억달러(2000년 기준)에 비해 5%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상황에서 절대적인 R&D 규모로 미국 등 선진국을 따라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길은 하나 뿐이다. 바로 R&D 투자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전략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석영철 산업기술재단 정책연구센터장은 “우리 형편에서 기초 및 응용, 산업기술 전반에 걸쳐 R&D 자금을 골고루 투입하는 것은 `작은 병에 물을 담아 사막에 뿌리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고 비유했다. 그는 “성장동력을 키우려면 우리가 강점을 지닌 분야에 대해서만 연구재원을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오아시스`전략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과제 선정할 때 `기획(planning)`기능 강화해야=미국은 올해 연방정부의 R&D 예산을 전년보다 8% 늘어난 1,118억달러로 책정했다. 하지만 미국정부는 우선적인 지원분야를 테러예방, 나노(Nano)기술, 정보기술(IT), 테러예방, 기후변화 등 4가지로 제한했다. 연구예산이 우리보다 20배나 많은 미국조차 선택적 지원을 중시하는 셈이다.특히 미국은 9ㆍ11테러 이후 테러에 따른 경제ㆍ사회적 피해를 줄이기 위해 ▲우편물 안전관리강화 ▲항공안전시스템 ▲안전성이 높은 건설재료개발 및 빌딩설계 등에 재원을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임기철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부원장은 “우리의 연구성과가 선진국보다 떨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기획(planning) 기능이 취약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임 부원장은 “기획이 엄정하게 이뤄져야 보다 구체적이고 성과 지향적인 연구개발이 가능해진다”고 설명했다. ◇기초연구는 사회 현안, 산업기술은 성장동력 제고에 주력해야=세계적인 과학정책 전문가로 꼽히는 영국 서섹스대학의 파빗교수는 “이제는 과학이 `유용한 과학(useful science)`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말은 기초적인 과학기술 개발은 어느 정도 진전된 만큼 앞으로는 기초 연구도 사회 현안을 처리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뜻이다. 반면 산업기술 연구는 철저하게 사업화를 통해 산업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분야를 중심으로 진행돼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흔히 바이오기술(BT) 등 신기술 분야에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BT도 8개 분야로 대별된다. 석영철 정책연구센터장은 “BT의 경우 우리가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는 단백질 공학정도”라며 “정부 R&D 예산지원도 우리가 성과를 거둘 수 있는 분야로 제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기획 및 평가부문에는 예산 거의 배분하지 않아=기획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정부의 R&D 예산도 효율적으로 사용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정부 지원은 그야말로 `눈 먼 돈`으로 전락하게 된다. 따라서 기획 부문에 대한 예산 배정도 필수적이지만 우리는 아예 무시되고 있다. 한민구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장은 “미국 등 선진국의 경우 전체 R&D 예산가운데 기획, 평가 등 관리부문에 약 10%의 자금이 배정되지만 우리는 고작해야 2~3%에 불과할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지속되는 한 기획 강화를 통한 연구 효율성 증대는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임창만 기술거래소 기획본부장도 “대형 건설프로젝트를 수행할 때 전체 예산 가운데 10% 이상을 설계 등 기획부문에 사용한다”면서 “정부가 R&D 예산을 연간 5조원 이상 쓰면서도 기획을 도외시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라고 지적했다. <정문재기자 timothy@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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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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