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외환위기를 겪은 사람들] 임창열 당시 부총리겸 재정경제원 장관 (下)

"정부 '경제 괜찮다' 강변은 10년전 실수 되풀이 하는것"<br>성장동력 쇠퇴해 가는데 정부 국제경쟁력은 너무 낙후<br>'위기' 인정안해 환란 못막아…지금도 안그런지 돌아봐야


[외환위기를 겪은 사람들] 임창열 당시 부총리겸 재정경제원 장관 (下) "정부 '경제 괜찮다' 강변은 10년전 실수 되풀이 하는것"성장동력 쇠퇴해 가는데 정부 국제경쟁력은 너무 낙후'위기' 인정안해 환란 못막아…지금도 안그런지 돌아봐야 대담=이용웅 경제부장 yyong@sed.co.kr 정리=손철기자 runiron@sed.co.kr 사진= 이호재기자 관련기사 • 김용환 "DJ '換亂극복' 선언 왜 서둘렀는지…" • 김중수 "잠재성장률 저하 가볍게 봐선 안돼" • 최종욱 "제역할 못한 정부·은행·기업 '합작품'" • 유종근 "DJ불신에 美와 외채협상 제일 힘들어" • 이규성 "위기는 올 수 있다. 문제는…" • 이연수 "정부 '하이닉스 무조건 팔아라' 독려" • 정덕구 "대선 휘말려 경제위기 올까 걱정" • 위성복 "기업 사정 모른채 구조조정 밀어붙여" • 손병두 "대우그룹 몰락, 정부도 책임있다" • 김대송 "증권사 무분별 해외진출 리스크 크다" • 이용득 "관치금융이 환란 부른 결정적 요인" • 강봉균 "대우, 구조조정 빨랐으면 해체 안돼" • 임창열 "환란 막을수 있었다" 비공개 사실 • 임창열 "'경제 괜찮다' 강변은 실수 되풀이" 임창열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은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이 쇠퇴해 제2의 경제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대통령 등 현정부는 '경제는 괜찮다'며 국민에게 강변하고 있지만 이야말로 지난 97년 외환위기를 예방하지 못한 정부의 실수를 되풀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외환보유액이 2,400억달러에 달하지만 정부는 외환관리에 계속 실패하고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97년 말 외환위기 상황과 관련해 임 전 부총리는 국제통화기금(IMF)과 구제금융 협상을 타결하고도 제때 지원금이 들어오지 않아 두 번가량 국가 부도위기에 직면했던 최악의 상황도 공개했다. 그는 "IMF가 외환위기 국가에 대한 전통적 처방으로 '고금리 정책'을 내세워 구제금융을 받으려면 고금리 정책 수용이 불가피했다"며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단 시일 내에 금리인하로 돌아서려 최선을 다했다"고 밝혔다. 대담=이용웅 경제부장 yyong@sed.co.kr -IMF 구제금융을 받으며 시행한 고금리 정책에 대해 아직도 말이 많다. ▦강경식 전 부총리 등 일부에서 (당시) 고금리 정책 수용이 (내가) IMF행에 유보적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라며 고금리 정책 수용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것은 국제금융을 전혀 몰라서 하는 소리다. 고금리는 외환위기에 대한 IMF의 전통적 처방으로 한국에만 적용된 게 아니다. IMF는 외환위기를 겪은 모든 나라에 고금리 정책을 예외없이 적용했다. 인도네시아는 98년 초 14%였던 금리를 98년 9월 57%까지 올렸다. 태국은 10~13%였던 금리가 26%로 두 배나 뛰었다. 필리핀도 11%에서 31%로 오르고 외환위기가 없었던 홍콩도 6%에서 30%까지 폭등할 정도였다. 멕시코는 13~14%였던 금리를 30%로 인상했다가 95년 3월에는 80%까지 갔다. IMF 구제금융을 받으려 한 이상 누가 협상을 했건 고금리 정책 수용은 불가피했다. -그래도 IMF의 고금리 정책이 우리에게 많은 고통을 주었다. ▦고금리가 우리 경제에 엄청난 고통을 안길 것으로 보고 IMF 측에 "우리나라는 물가가 안정돼 있고 재정도 건전하니 타협하자"고 수도 없이 상의했다. 미셸 캉드쉬 IMF 총재는 고금리 정책은 IMF의 전통적 처방임으로 "뺄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이었다. 고금리 정책을 빼면 IMF 이사회 통과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IMF 구제금융도 받으면서 최단 시일 내 고금리 정책을 수정해 금리인하로 갈 수 있는 길을 트려고 엄청난 공을 들였다. IMF 측과 합의문에 '잠정적' 고금리 정책이라는 문구를 넣어 위기시에는 30%까지도 금리인상이 가능하도록 허용했지만 경제상황이 호전되자 98년 2월17일부터 금리인하를 다시 추진할 수 있었다. -IMF와 구제금융 협상을 단시일 내에 끝냈는데. ▦97년 11월23일 IMF 측과 구제금융 협상에 들어갔는데 협상이 타결돼도 지원금을 받으려면 한 달은 걸릴 상황이었다. 반면 만기가 돌아오는 단기외채가 많아 한 달 후면 IMF로 가는 국치를 겪으면서 국가 부도까지 날 상황이었다. -국가 부도의 최대 위기상황은 언제였나. ▦IMF 측과의 협상이 97년 12월3일 타결됐지만 위기는 대선이 끝날 때까지 계속됐다. 아니 오히려 악화됐다. 가용 외환보유액이 11월 초 223억달러였는데 11월19일 142억달러로 떨어졌고 12월3일에는 57억달러로 내려갔다. DJ가 당선된 12월19일 외환보유액은 39억달러에 불과했다. 부도가 날 수도 있어 조바심을 치는데 돈을 지원하기로 했던 세계은행(IBRD)이 최종 결정을 미루고 있다는 급보가 워싱턴에서 날아왔다. 그 사실이 시장에 알려졌으면 '주식회사 대한민국'은 부도가 났을 것이다. -어떻게 위기를 모면했나. ▦급히 사태를 해결하려면 미국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래리 서머스 미 재무부 부장관과 핫라인으로 통화해 "당신들 한국을 부도 내기로 작심한 거냐"고 강하게 항의하며 해결을 촉구했다. 서머스 부장관이 "왜 그러냐"고 되물어 "세계은행이 지원 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으니 한국을 부도 낼 생각이 아니면 빨리 수습해달라"고 했다. -대선 후 IMF 측과의 재협상 문제가 불거져 위기가 닥치기도 했는데. ▦IMF행을 12월3일 선언하니 '경제신탁통치가 시작됐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DJ 측에서 당선되면 IMF와 재협상한다고 광고를 하고 나서자 국제금융시장이 크게 동요했다. 대선후보들에게 확약을 받지 않으면 큰일이 나겠다 싶어 YS에게 대선후보들과의 재회동을 요청했다. 당시 이회창 후보가 "DJ 측이 재협상론을 꺼내 위기를 키우고 있다"고 비판해 분위기가 한때 좋지 않았지만 DJ가 "나는 지켜주겠다"고 흔쾌히 말해 순조롭게 합의를 봤다. -97년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기자회견을 하고 추가 수습책을 발표했는데. ▦세계은행의 지원이 확정돼 한고비를 넘겼지만 위기는 지속됐다. IMF 및 서방 선진국들과 추가 지원 협의를 계속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 전날이었지만 결과를 서둘러 시장에 알려야겠다 싶어 24일 자정에 기자회견을 했다. IMF가 100억달러를 조기 지원하고 G7 국가들의 시중은행이 만기가 돌아오는 한국의 단기외채를 전부 연장해준다는 내용이었다. 바로 그때 또 한번의 국가 부도 위기를 넘겼다. G7과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으면 IMF 돈이 들어오는 도중에 나라가 망할 뻔했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크리스마스 새벽에 관계자들과 청진동 해장국집에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식당에 들어가니 TV를 봤던 국민들이 박수를 쳐주며 "밥 값을 내주겠다"고 해 보람을 느꼈다. -IMFㆍ국제금융기관 등과 협상하면서 강하게 느낀 점이 있다면. ▦미국의 중요성이다. 미국과 교감을 잘해야 한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고의 강대국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세계은행 총재는 미국이 맡고 있다. IMF는 유럽 측에서 총재를 맡지만 미국이 유일하게 비토권을 행사하고 있다. IMF와의 구제금융 협상에서도 미국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IMF와 협상하던 때 미 재무부 간부들도 힐튼호텔에 와 있었는데 IMF 측 협상단이 휴식 시간에 잠시 나갔다 오면 전과 얘기가 달라지곤 했다. 직감적으로 미 재무부가 협상을 코치하며 IMF를 움직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외환위기를 극복한 후 현재 한국 경제가 잘 가고 있다고 보나. ▦외환위기를 예방하지 못한 정부의 첫번째 실수는 위기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었다. 위기라고 경고하면 청와대에 혼나고 관련 보고서는 회수당하기 일쑤였다. 지금은 과연 그런 일이 없는지 한 번 되돌아보자. 일반 국민은 경제가 어렵다고, 사는 게 힘들다고 하는데 (노무현) 대통령은 괜찮다며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대통령은 언론이 경제상황을 왜곡한다고 말하는데 그건 아니라고 본다. 외환보유액이 많아지고 수출도 잘돼 경제가 태평성대를 이루고 있냐 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 제2의 경제위기가 올 수 있다는 자세로 대비해야 한다. -한국 경제가 당면한 문제는 무엇인지. ▦최대 위기는 성장동력의 쇠퇴다. 또 노사 문제가 외환위기 이전 상황으로 되돌아가고 기업은 해외로 빠져나가는 등 문제가 적지않다. 수출 탄력도 떨어지고 실업자는 늘어나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국제 경쟁력은 너무 낙후돼 있다. 일자리는 기업이 만드는데 기업이 투자하려고 해도 정부가 막는다. 하이닉스 투자건이 대표적이지 않나. 경기도 이천에 투자하면 안 된다고 정부가 못을 박아버렸는데 중국은 하이닉스를 유치하려고 10억달러 이상을 지원해줬다. -정부의 외환관리 정책은 어떻게 평가하나. ▦외환보유액이 이제 2,400억달러에 달한다고 정부가 외환관리에 자만해서는 안 된다. 경상수지 흑자 상황에서 자본수지도 흑자를 보이고 있으니 정부의 외환관리는 외환위기 당시와 다른 측면에서 지금도 잘못하고 있는 게 아니냐. 세계시장에서 한국 제품이 가격 경쟁력 면에서도 일본 제품에 밀리고 있는데 이는 정부가 외환관리에 실패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해외자원 확보와 해외 첨단기업 M&A 등에 과감하게 나서고 있는 중국과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외환정책 난맥상은 더 확실해진다. ● 남기고 싶은 이야기 YS·DJ 통합리더십, 금모으기 운동등 환란 교훈, 좋은 기억서 찾았으면… "외환위기를 결코 잊지 말자." 인터뷰 중 '기록의 소중함'을 몇 차례나 강조한 임창열 전 경제 부총리는 "위기를 겪으며 남기고 싶은 것들이 많은데 특히 좋은 기억 중에서 교훈을 찾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외환위기의 와중에서 YS와 DJ 2명의 대통령을 겪었던 임 전 부총리는 "YS와 DJ가 정권교체의 와중에도 아름답고 훌륭한 통합 리더십을 창출했다"며 "노무현 대통령이 요즘 여러 문제에 대해 전직 대통령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바른 자세가 아니다"고 일침을 놓았다. 그는 "YS가 '내 재임 중에는 IMF 못 간다'고 고집했으면 나라가 부도났을 것"이라며 "경제주권을 내주는 어려운 결단을 내린 YS의 용기와 고민만은 역사가 평가해주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DJ가 당선자 시절 은행장회의에 참석해 중소기업 대출 등을 독려, 힘 빠진 정권의 부총리에게 힘을 실어준 것에 대해서도 그는 존경을 표했다. 임 전 부총리는 또 "IMF 측이 요구한 구조조정에 노동계가 합의해준 것 역시 어려운 결정이었다"고 평가하며 "당시 노사정 대화합의 정신을 현 노조와 지도부가 잊지 말았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외환위기를 수습하면서 금모으기운동에 나선 한국 국민을 보며 외국 지도자들이 '한국은 분명 다시 일어설 것'이라고 격려했다"며 "한국인은 대단한 저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입력시간 : 2007/02/21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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