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말 못하는 변호사' 설곳 사라진다

서울행정법원 "구술재판 도입" 밝혀…서면보다 구두변론 중시<br>변론과정 투명공개로 결과 예측도 가능<br>본격 실시 땐 변호사 업무부담 크게 늘듯


“X월X일자 소장(소송제기 서류) 진술합니다” “X월X일자 답변서 진술합니다” “원고측이 주장하는 법적 근거를 서면으로 제출해주세요” 국내법정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변호사가 법정에 출석해 ‘소장 진술, 서면 진술’이라는 말을 하면 미리 제출한 소장이나 서류를 마치 읽은 것처럼 재판이 진행된다. 재판장 역시 변호인들에게 말로 설명하라고 하기 보다는 서면으로 제출하라고 요구할 때가 많다. 그리고는 다음 재판 날짜를 잡고 재판이 끝나버린다. 이번 재판을 위해 수일을 벼르고 별렀다가 법정에 출석한 원고, 피고들은 자신들의 억울한 사정에 대해 말 한마디 못해보고 또는 돈 주고 고용한 변호사가 말 한마디 하는 것을 못보고 재판이 끝난다. 앞으로는 이 같은 법정 풍경이 크게 달라질 전망이다. 최근 서울행정법원은 5개 시범재판부를 필두로 ‘구술재판’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형사공판에서는 이미 ‘공판중심주의’가 도입돼 재판정에서의 증인심문과 원피고측 법정공방이 활발해지고 있는 추세다. 각 법원에서도 구두변론을 강화하는 추세다. 대전지방법원에 접수된 아이칸과 KT&G의 가처분 신청사건도 공개 구술변론으로 진행된다. ◇구술변론 어떻게 진행되나= 기존에 10~20분 단위로 진행되던 재판이 30~90분 단위로 재판 일정이 결정된다. 재판이 열리기 전 준비절차 기간에 제출했던 주장과 자료를 20~30분 가량 말로 진술하게 한다. 여기서 미리 준비한 서류를 읽으면 그야말로 점수가 깎이게 된다. 영화에서 보듯이 파워포인트, 각종 동영상 등을 적극 활용, 한정된 시간안에 재판부를 말로 설득시켜야 한다. 이 경우 판사뿐만 아니라 누구나 재판정에 앉아만 있어도 사건의 내용과 양측의 공방을 들을 수 있어 재판결과까지 예측이 가능해진다. 서울행정법원 김상준 부장판사는 “재판정에서 양측이 말로 다투게 되면 쟁점이 쉽게 부각돼 생생한 재판이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또 “소송 당사자들인 일반인도 재판정에서 사건이 어떻게 재판되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 원ㆍ피고가 판결에 대해 승복하는 정도가 높아진다”고 덧붙였다. 행정법원에 있는 5개 시범재판부는 기존 사건중에서 구술변론으로 할만한 사건을 추려 이번달 말경부터 구술변론을 실시할 예정이다. ◇변호사들 죽어난다= 구술변론의 취지는 좋지만 본격적으로 실시되면 변호사들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예전에는 서류작성만 하면 됐으나 이제는 구두변론까지 이중으로 준비해야 하기 때문. 대한변호사협회 공보이사 하창우 변호사는 “서면은 서면대로 제출해야 하고 구술변론은 구술변론대로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변호사들의 업무가 늘어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능력이 없거나 불성실한 변호사들의 경우 판사뿐 아니라 재판장에 앉아 있는 의뢰인으로부터 적나라한 평가를 받게 된다. 대형로펌의 한 변호사는 “변론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기 때문에 그만큼 변호사들의 부담은 커질 것”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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