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금융사 `의결권제한` 허실

정부는 대규모 기업집단에 속하는 금융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을 제한할 것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금융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계열사 주식의 의결권 제한에 대한 논리적 배경은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 볼 수 있다.첫 번째는 재벌기업이 금융회사를 지배력의 확장의 도구로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막아야 한다는 시각이다. 즉, 계열 금융회사를 통해 산업자본을 지배하고, 산업자본이 다시 금융자본을 통제함으로써 경제력이 집중되고 기업경영의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금융회사의 의결권 제한은 고객과의 이해상충 방지라는 측면에서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고객이 맡긴 자금으로 주식에 투자하고 있는 금융회사가 계열사의 이익을 위하여 고객의 이해에 반하는 방향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를 견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경제력 집중 문제는 우리 경제를 한 단계 더 성장시키기 위해서 해결되어야 할 과제라는 데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또한 고객과의 이해상충 방지는 투자자보호라는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금융시장과 금융산업의 선진화를 위해 해결되어야 할 문제라는데도 이견이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금융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계열사 주식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것이 정당하고 또 효율적인 규제수단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금융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계열사 주식의 의결권 제한은 다음과 같은 면에서 효율적이지도 않고 정당하지도 않은 것으로 보인다. 우선 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 제한은 오히려 고객의 이해에 반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현재 투자신탁운용사와 보험사 등 금융회사의 소속 계열사 주식투자 제한 제도로 인해 일부 금융회사에서는 계열 우량기업의 주식투자가 제한되어 오히려 자금운용의 수익률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고 있다는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의결권이 제한되는 경우 주주총회에서 고객의 이익에 반하는 사항에 대해 금융회사가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해 고객에게 손실이 돌아가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 또한 금융회사의 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 제한과 소속 계열사 주식투자 제한은 중복규제인 동시에 금융 회사들에 대한 비대칭적인 규제로서 금융산업내에서 불평등 경쟁을 조장할 여지가 있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기업경영의 투명성 제고를 통한 투자자 보호라는 측면에서 기관투자가의 역할이 보다 중요시되고 있으며, 이는 기관투자가들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를 통한 경영참여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 강화를 위한 여러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관성과 형평성이 결여된 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 제한은 오히려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도 있으며, 나아가 전반적인 금융산업 및 금융시장의 효율성을 저해할 가능성이 있다. 다음으로 의결권 제한은 계열기업의 소유 및 지배구조를 오히려 불투명하게 하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현재 일부 대규모 기업집단에서는 금융회사를 통해 소속 계열사를 소유․지배하고 있다. 만일 금융회사의 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이 제한되는 경우, 해당 계열사는 외국인투자자나 또는 국내의 다른 기업의 적대적 M&A 시도에 대해 무방비 상태로 놓이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적대적 M&A는 바람직하지도 않거니와, 해당 기업은 이를 막기 위해 현행 규제를 회피하는 새로운 편법을 동원할 것이고, 이는 오히려 기업의 소유․지배구조를 불투명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경제력 집중과 고객과의 이해상충 문제는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이다. 그러나, 의결권 제한의 효과가 의문시되고 또 그로 인한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금융회사의 계열사 주식에 대한 의결권 제한을 확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경제력 집중과 고객 및 투자자 보호는 다음과 같은 방법을 이용하여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이사회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를 개선해 나갈 필요가 있다. 또한 금융회사의 회계를 보다 투명화해야 하며, 금융감독당국은 보다 철저한 감독을 시행하여야 할 것이다. 정부는 이와 같은 방향으로 노력을 지속하여 왔으며, 특히 외환위기 이후, 많은 면에서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다. 아직 그 결과가 미흡하다 할지라도, 경제력집중이나 고객과의 이해상충 문제 등은 한 순간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고, 중장기적 안목에서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노력을 지속할 필요가 있다. <홍정훈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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