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박흥진의 할리우드 통신] 버지니아 참사등 폭력영화 모방 범죄 논란

'잔혹함 표현'에 자유있지만 책임도…


대형 폭력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거론되는 것이 사건과 영화간 모방 범죄 상관 가능성이다. 버지니아공대 총격 사건의 주범인 조승희가 NBC-TV에 보낸 망치를 든 사진이 방영되자 뉴욕타임스는 이 사진이 영화 '올드보이'에서 주인공 대수(최민식)가 오른 손에 망치를 든 모습과 같다며 사건과 영화의 상관 가능성을 내비쳤다. 박찬욱 감독의 '올드 보이'는 망치와 칼과 총을 동원한 잔인한 유혈 복수극. 박 감독의 재능을 읽다가도 영화가 지나치게 끔찍해 이맛살이 찌푸려지는 부분도 없지 않았다. 영화는 2004년 칸 영화제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는데 그것은 당시 심사위원장이었던 폭력 중독자인 쿠엔틴 타란티노의 적극적 지지가 큰 힘이 됐다. 과연 조승희가 '올드보이'로부터 영향 받아 범행했을까. 그건 조승희만이 알 일이지만 '올드보이'보다는 차라리 콜럼바인 학살의 두 장본인인 10대들을 모방했을 가능성이 있다. 사건의 현장이 학교라는 것과 그가 남긴 노트에 두 범인의 이름이 거론됐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그렇게 유추할 수 있다. 콜럼바인 사건 때도 두 10대가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과 같은 긴 외투를 입었다고 해서 사건과 '메트릭스'를 연관시키기도 했었다. 형이 동생을 죽이는 사건이 있을 때마다 카인과 아벨의 사건을 모방했다는 말이 나오듯이 잔인한 폭력사건이 일어나면 어김없이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 유혈폭력 영화다. 살인범들이 자신들 입으로 영화를 따라 했다고 말한 대표적 케이스가 스탠리 큐브릭의 '클라크워크 오렌지'(1971)와 올리버 스톤의 '내추럴 본 킬러즈'(1994)다. '클라크워크 오렌지' 경우 영국의 10대들이 영화에서처럼 노래 '빗속에 노래하며'를 부르며 소녀를 강간했고 스페인에서도 역시 영화 내용처럼 3명의 10대들이 노숙자 여인을 재미로 불태워 죽였다. 또 오클라호마의 두 10대 연인은 '내추럴 본 킬러즈'를 흉내 내 살인을 해 당시 화제가 됐었다. 이 사건은 희생자의 가족이 영화 제작자와 감독 등을 상대로 고소를 해 7년간의 법정공방 끝에 피소측 승리로 끝났다. 표현의 자유가 철저히 보장된 미국에서는 영화와 실제 사건이 직접 관계가 있다는 확실한 증거를 대지 못하면 법원은 거의 절대적으로 영화측 편을 들어주게 마련이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에도 책임이 따르게 마련인데 요즘 미국서 극성을 떠는 유혈폭력 공포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자유만 누리지 책임은 방기하는 것 같다. 문제는 '쏘우'와 '호스텔' 같은 잔혹한 영화로부터 가장 영향받는 대상은 감수성이 한창 예민한 10대들이라는 점. 물론 이런 영화들의 등급은 성인 동반 없이 아이들이 입장할 수 없지만 감각기관이 얼얼하도록 자극적인 스릴러를 즐기는 아이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런 영화를 보게 마련이다. 특히 미국 영화는 유럽 영화보다 폭력이 훨씬 잔인하고 끔찍한 반면 섹스에는 과민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프랑스 사람들은 "미국 사람들은 사람들의 목과 팔 다리가 날아가는 것이 자연스런 인간행위인 섹스보다 낫다고 생각한다"고 비아냥댄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젊은이들이 자살했다고 해서 괴테를 나무랄 수 없듯이 근본적으로 사건의 원인을 영화에 돌릴 수는 없다. 그러나 폭력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1919년 올리버 웬델 주니어 미 연방대법원 판사가 한 말을 한번 되새겨 볼 만하다. "표현의 자유는 헌법에 의해 명백히 보호받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누구도 만원극장 안에서 '불이야'라고 소리 칠 권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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