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송현칼럼] 한국경제에 닥쳐올 먹구름

영국의 권위지인 파이낸셜 타임스는 얼마전 「아시아의 미래, 환하게 빛나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전문가인 마틴 울프의 주장이 맞다면 올해부터 오는 2010년까지 한국의 성장속도는 일본은 물론 말레이시아나 태국, 인도네시아를 훨씬 웃돌게 될 전망이다.한국인들은 이제 지난 98년의 아시아 외환위기에서 벗어나 빠른 회복세를 보인 데 대해 자부심을 가질만하다. 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연간 6% 안팎으로 돌아섰다. 이는 중국과 인도의 성장속도와 거의 맞먹는 수준이다. 한국이 만약 6%대의 성장률을 지속한다면 여전히 휘청거리는 일본에 대해 확실한 우위를 점하게 될 것이다. 이같은 빠른 회복세는 우선 한국의 실질임금이 탄력적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이 역경을 딛고 생산성과 생활수준을 다시 상향곡선으로 끌어올리게 된 것은 무엇보다 성숙한 국민성 덕택이다. 촘촘하게 연결된 현대의 글로벌경제에서 어떤 국가도 하나의 섬처럼 폐쇄적이고 자족적인 존재로 남아있을 수 없다. 이런 점에서 2차 대전의 종전시점이 케인즈 이후 시대였다는 사실은 한국에게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식민지 한국이 전세계가 공황에 휩싸였던 30년에 식민지배에서 벗어났다면 선진기술 모방을 통한 수출 주도형의 경제구조를 갖추기 힘들었을 것이다. 한국의 제조업체들이 미국이나 캐나다, 영국 등지의 시장에서 기반을 다지자마자 이들 국가의 유권자들은 한국을 겨냥, 수입관세나 쿼터를 제한하는 법안을 앞다투어 제정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과거사를 짚어보는 것은 최근 아시아의 경기 회복이 외부의존적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아시아는 앞으로도 북미나 유럽 등 선진국의 호경기에 상당부분 기댈 수밖에 없다. 다행히도 미국 경제는 새 천년을 맞아 매우 양호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행운이 따르는 셈이다. 재정정책과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통화조치는 사상 최저수준의 실업률 속에서도 이례적으로 잘 가동되고 있다. 과학 및 기술부문의 생산성은 새로운 호전단계에 진입한 듯하다. 하지만 나는 물론 사려깊은 한국인들은 요즘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노련한 앨런 그린스펀 의장은 틈만 나면 미래의 고통을 경고하는 연설을 반복하고 있다. 그린스펀 의장이 우려하는 것은 바로 월가의 광폭한 증시호황이다. 미국 소비자들이 요즘 수입을 훨씬 웃도는 소비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은 주가 매매차익에 대한 심리적 즐거움 때문이다. 또 이같은 기적이 장기간 이어질 것이라는 믿음도 자리잡고 있다. 과거 경제사는 증시 열풍이 엄청난 과대 평가를 창출한 후 언젠가 열기가 급속히 식어버린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이 경우 한 때 주가를 끌어올리는 호재마저 순식간에 악재로 돌변해 버린다. 지난 29년에도 그랬듯이 이같은 사례는 항상 반복되기 마련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같은 투기 거품에서 안전하고 통제된 방식으로 공기를 빼내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만약 중앙은행이 통화고삐를 급격하게 장기간 조이게 되면 과대평가된 주식은 폭락, 저평가된 상태로 변해버린다. 이는 경제와 사람들의 복지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전세계를 투기시장으로 몰고갔던 29년의 월가 대붕괴는 가장 적절한 사례다. 정부는 당시 원칙적인 통화정책을 부적절하게 적용시키는 바람에 30년대의 대공황을 초래하고 말았다. 지난 89년 일본의 부동산 및 증시의 투기거품이 터져버린 것은 최근의 사례다. 일본은 이후 수년간 경기 침체에 빠져 들었고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반세기 동안 주가가 오르면서 증시 호황을 누려왔다. 미국의 일반인들이 직·간접적으로 많은 주식을 보유하게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금융시장의 급격한 붕괴는 그 어느때보다 미국의 달콤한 경제를 위협할 것으로 우려된다. 이는 곧바로 다른 나라로 독버섯처럼 확산돼 경기 회복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흔히들 금융시장에 심각한 조정국면이 발생한다면 현명하고 강력한 그린스펀 의장이 바짝 조였던 통화정책을 완화기조로 되돌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린스펀 의장은 87년 10월 전세계적인 증시 붕괴를 막기 위해 다행히도 신속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그 당시 좋은 결과를 이끌어낸 데는 행운이라는 요소가 어느 정도 있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21세기에 막 접어든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세계경제여건이 지난 80년대에 비해 훨씬 더 취약해졌다는 사실이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선진 7개국(G7) 정부들은 여유자금의 대부분을 소진해버렸기 때문에 예외적인 도전에 직면했을 때 대처능력이 훨씬 떨어져 있는 실정이다. 다만 한국인과 미국인들이 합리적인 낙관론을 가질 수 있는 근거는 불완전한 경제학이 그동안 상당한 진보를 일궈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유권자들은 이제 정치인들에게 압력을 행사해 그같은 지식의 일부라도 제대로 활용하게끔 만들어야 한다. 폴 새뮤얼슨 ·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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