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서울의 중국식 표기를 ‘수이’(首爾)로 정하고 중국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도록 설득하고 있으나 돌아가는 모양새가 쉽지 않아 보인다.
서울시가 서울의 중국식 표기를 중국의 표준어인 보통화로 ‘셔우얼’로 발음되는 ‘首爾’로 정한 것은 중국 사람들이 ‘서울’ 대신 ‘한청(漢城)’이라는 용어를 지금까지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을 ‘셔우얼’로 불러달라는 우리의 요구가 중국 언론에 보도되면서 중국 네티즌들의 반응이 인터넷을 달구고 있으나 부정적인 반응 일색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중국의 책임 있는 당국자들도 콧방귀를 뀌고 있음은 물론이다.
불편한 한·중관계 단면 반영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과 함께 평탄하지 못한 한중관계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성’(漢城) 대신 ‘서울’이라는 고유명사를 사랑하는 것과 중국 사람들이 ‘한청’(漢城)을 고집하는 것은 그 이유가 똑같다.
바로 한(漢)이라는 한자가 갖는 의미 때문이다. ‘한’(漢)은 ‘한’(韓)과는 달리 ‘한문’(漢文) ‘한족’(漢族) 등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 그 자체를 뜻한다. 더구나 ‘성’(城)은 ‘경’(京)이나 ‘도’(都)와는 달리 수도가 아닌 일개 성곽에 불과하다는 느낌도 준다.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서울이 왜 한청(漢城)이냐’고 불만이고 중국 사람들은 ‘수백년간 써온 익숙한 용어인 ‘한청’을 버리고 느닷없이 셔우얼을 쓰라고 강요하냐’며 서로 반문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인들이 ‘한청’(漢城)이라는 단어에 집착하는 것은 바로 ‘漢’이 갖는 상징성 때문인 것은 분명하다. 서울이라는 도시를 외국이 아닌 범중화권의 일부로 치부하는 만족감을 버리기도 아쉬울 것이다.
그렇지만 기자가 생각하기에 ‘수이(首爾) 사건’은 그런 논란의 중심이 아닌 다소 엉뚱한 대목에서 찝찝한 구석이 많다.
먼저 首爾는 한국 사람들이 한자를 중국식으로 발음하는 최초의 단어가 될 것이다. 首爾를 ‘수이’가 아닌 ‘셔우얼’로 발음해야 하기 때문이다. 단어의 70%가 한자어로 구성된 한국어가 중국어와 완연히 다른 것은 문법적 체계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 못지않게 바로 그 발음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東西南北’을 우리는 ‘동서남북’으로 읽고 중국은 ‘둥시난베이’로 발음하는 식이다. 중국식으로 발음하는 한자가 늘아나면 늘어날수록 한국어는 크나큰 위기에 봉착할지도 모른다. 물론 이것이 기자 개인이 갖는 하나의 기우이기를 바란다.
중국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서울’이라는 발음에 가까운 한자를 음차해 사용한다면 몰라도 우리가 스스로 중국식 발음으로 읽어야 하는 한자를 만들어 정작 중국인들은 외면하는데 우리만 중국식으로 발음하는 형국이니 모양이 고약해도 여간 고약하지가 않다. 더군다나 ‘이’(爾)라는 글자도 우리식 한자가 아니라 중국식 간자를 쓰고 있으니 이것 역시 우리 한문체계에 침투한 최초의 중국식 간자일 것이다.
‘이’(爾)라는 글자도 그렇다. 단지 발음에만 집착에서 별다른 뜻 없이 어조사에 불과한 이 단어를 수도 이름에 붙인 것도 보기에 흉하다. 중국 사람들이 ‘首爾’를 읽으면 ‘머리야’ ‘머리로새’ ‘머리 바로 너냐’ 정도로 이해될까.
한자어 신중한 운용 아쉬워
때문에 중국에서도 ‘爾’는 하얼빈(哈爾濱)이나 치치하얼(齊齊哈瀕)처럼 만주어나 몽고어에서 음차한 지역명을 쓸 때 애용하는 말이다. ‘爾’라는 글자를 쓰는 지역명이 주로 만몽(滿蒙) 지역에서 발견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거기에는 ‘오랑캐’라는 이미지가 숨어 있는 것이다.
서울을 중국 사람들이 한청(漢城)이라고 부르는 것을 괘씸해 하는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나 한자가 우리에게 외계어가 아닌 이상 한자식 용어 선택과 그 운용에 대해서는 보다 신중한 연구와 대처가 아쉬운 것은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