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옛 큰별들 "역사속으로"

신한에 합병 조흥도 연말 간판내려<br>노조·친목모임 등으로만 명맥 유지

국내 최초의 민족자본은행으로 출범한 조흥은행의 옛 본점 모습. 이 은행은 108년의 역사를 마무리하며 내년에 신한은행과 통합된다.

조흥은행에서 상무를 지내고 은퇴한 조남용씨는 연말이면 정들었던 은행의 간판이 내려간다는 생각에 서운함을 금치 못하고 있다. 퇴직자 모임인 ‘조흥동우회’ 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올해 동우회 기금을 10억원으로 늘렸다. 조흥은행이 신한은행으로 합병되면 모(母) 은행으로부터 지원이 끊겨질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다. 백팔번뇌라고 했던가. 국운이 백척간두에 서있던 시절, 조선(朝鮮)을 흥(興)하게 하겠다는 일념으로 설립된 조흥은행은 연말에 신한은행과의 합병이 마무리되면 108년의 파란만장했던 역사를 뒤로하고 이름을 내려야 할 처지에 있다. 이로써 설립년도 순으로 조흥과 상업ㆍ제일ㆍ한일ㆍ서울은행의 머리 글자를 따서 부르던 ‘조ㆍ상ㆍ제ㆍ한ㆍ서’의 5개 은행 모두에서 고유의 이름이 사라지게 된다. 이제 ’조ㆍ상ㆍ제ㆍ한ㆍ서’의 간판이 내려지지만, 그 흔적은 은행 안팎에 남아있다. 은행 내부에서는 경영권 변동에 저항해온 노동조합과 친목모임, 동호회등에 아련하게 이름이 남아있고, 밖으로는 퇴직자들의 모임등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옛 서울은행 행원들이 결성한 ‘금융노련 서울은행지부’에 과거의 이름이 유지되고, 우리은행에는 ‘상은동호회’와 ‘한일동호회’가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옛은행의 이름을 딴 동호회 활동은 은행 내에서 대놓고 얘기할 수 없는 처지다. 경영진들이 합병과정을 거치면서 ‘조직 통합’을 최고의 목표로 내세우면서 파벌주의를 경계하고 있기 때문. 동호회는 각 은행 출신들이 정기적인 모임을 갖거나 일자리를 교류하고 창업하는 전직동료들을 지원하는등의 활동을 하는 친목단체. ‘조흥동호회’는 은행에서 20년이상 근속하거나 지점장 이상으로 퇴직한 임직원 4,000명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조흥동우회의 조 회장은 “합병이 완료되면 동호회 활동도 위축될 것”이라며, “108년의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서도 조흥은행의 이름을 사용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조ㆍ상ㆍ제ㆍ한ㆍ서’는. 이 약칭에는 우리나라 금융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첫글자를 장식하는 조흥은행은 1897년 한성은행으로 출발, 한세기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며 맏형 대접을 받았다. 2년뒤인 1899년 설립된 대한천일은행이 상업은행으로 이름을 바꿨고, 1929년 제일은행, 1932년 한일은행이 각각 설립돼 4강을 구축했다. 광복후 1959년 설립된 서울은행은 마지막으로 5대은행에 합류했다. 하지만 지난 98년 외환위기는 ‘대마불사’의 신화를 무너뜨리며, 은행권에 태풍을 몰고와 ‘조ㆍ상ㆍ제ㆍ한ㆍ서’ 시대의 막을 내리게 했다. 조흥은행은 기아차와 한보철강, 쌍용자동차로 인해 부실화되고, 83년 설립된 금융계의 막내 격인 신한지주에 경영권을 넘겼다. 상업은행은 한양에 발목을 잡혀 역사에서 사라졌고, 대우에 발목이 잡혀 외국에 넘어간 제일은행은 외국인대주주 은행의 이름을 앞에 내세워 ‘SC제일은행’으로 바꿨다. 한일은행과 서울은행은 각각 고려합섬과 동아건설의 침몰로 인해 생명력을 다했다. ’조ㆍ상ㆍ제ㆍ한ㆍ서’가 물러난 5대 은행의 자리에는 주택과 국민은행이 합병한 국민은행과 상업ㆍ한일ㆍ평화ㆍ광주ㆍ경남은행을 모은 우리은행, 후발주자인 신한은행과 하나은행이 차지했다. 마지막까지 행명을 유지하던 조흥은행도 오는 9월 합병추진위원회가 구성되면 늦어도 내년 하반기 중에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은행을 부르는 순서도 과거처럼 출생년도를 기준으로 형님ㆍ동생과의 관계가 아니라. 돈(자산)이 많은 순서로 바뀌었다. 국민ㆍ우리ㆍ신한ㆍ하나 은행 순이고, 신한과 조흥이 합병을 마무리하면 그 순서도 또 바뀐다. 은행 세계가 각박해지고 있는 것이다. ‘조ㆍ상ㆍ제ㆍ한ㆍ서’는 나라가 어려울 때 구국의 일념으로 세워진 민족 은행이며, 요즘 말로 이른바 ‘토종은행’이었다. 세계를 놀라게했던 금융구조조정의 바람에 다섯 간판 모두가 내려가지만, 은행원들의 머릿속에서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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