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아라파트 사망] 팔레스타인과 中東 '지각변동'

중동 정치판의 `부도옹(不倒翁)'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11일 끝내 사망했다. 그를 가리켜 "목숨이 9개 있다는 고양이 보다 명이 길다"고 했지만 그 역시 75세에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한 것이다. 아라파트의 죽음은 중동 장기 집권 지도자들의 본격적인 세대 교체를 의미한다. 후세인 전 요르단 국왕과 하페즈 아사드 전 시리아 대통령, 셰이크 자이드 아랍에미리트연합 대통령에 이어 아라파트까지 타계했다.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도 패전후 전범으로 전락하면서 중동 현대사의 거목들이 차례로 꺾였다. 사우디 아라비아의 파드 국왕과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 등 몇몇 고목(古木)들만이 남게됐다. 이라크 전쟁 후 중동은 질서재편의 소용돌이 중심에 자리 잡고있다. 외압에 의한 질서재편이지만 거스를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기도 하다. 절대 왕정과 권위주의적장기 독재체제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중동 정치판은 내부에서 치솟는 변화 요구와외부의 집요한 압력 사이에서 중대 기로에 서있다. 아라파트 수반은 그런 혼돈 속에서 먼저 퇴장한 것이다. 아라파트는 자치정부 출범 후 10년만에 최악의 정치적 위기 속에 지난 8월 4일75회 생일을 맞았다. 35년간 팔레스타인 독립투쟁을 지도해온 아라파트는 미국과 이스라엘로부터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고 자치정부 청사에 2년반째 갇혀 권력무상을 실감해야 했다. 부패척결과 개혁을 요구하는 시위와 무장 저항이 이어지면서 가자지구가 무정부상태에 빠지고, 자신의 정치 기반인 파타운동 내부에서조차 반기를 들고 나왔다. 아라파트를 위시한 혁명 동지세대와 젊은 개혁세대간 세대차이가 극명해지면서 아라파트도 변화와 개혁의 대세를 거부하기 어려워졌다. 아라파트는 지난달초 아랍 신문과의 회견에서 팔레스타인 독립국가가 출범한뒤퇴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생전 염원이던 팔레스타인 독립국 창설을 보지 못하고먼저 팔레스타인 민중을 떠났다. 아라파트 사후(死後) 중동은 이스라엘-아랍간 증오와 대립의 완충지대를 상실하게 됐다. 아라파트는 팔레스타인 저항과 독립투쟁의 대명사였으며, 아랍권은 아라파트를 지지하는 것이 곧 이스라엘과 싸우는 길이었다. 팔레스타인 분쟁은 아랍권이각기 정치개혁을 지체하고 있는 빌미로 작용해왔다. 이제 아라파트가 사라진뒤 아랍권은 이스라엘과 화해냐 대립이냐를 분명히 선택해야할 상황에 처하게 됐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재선으로 아랍권은 대이스라엘 관계에 있어서 선택의 폭이 극히 좁아졌다. 아라파트는 죽기전 후계구도를 가시화하지 않았다. 그는 2인자를 허용하지 않았다. 유력한 경쟁자였던 마흐무드 압바스 전 총리를 거세했고, 아흐마드 쿠라이 현총리에게도 실권을 넘기지 않았다. 이때문에 당분간 쿠라이 총리와 압바스 전 총리의 공동 위기 관리 체제가 가동될 것으로 보인다. 아라파트가 프랑스로 떠난뒤로 쿠라이는 내각을, 압바스는 PLO와파타운동을 지도해왔다. 그러나 문제는 하마스와 이슬람 지하드 등 5,6개 주요 무장ㆍ정치단체들을 조정할 능력이 이들에게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 팔레스타인 민중으로부터 광범위한지지와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다. 아라파트는 끊임없이 내부적으로 도전을 받아왔지만 주요 정파와 무장단체들 사이에서 유일한 균형자 역할을 해왔다. 그의 사망은 그 완충지대의 제거를 의미한다. 가자지구 완전 철수와 요르단강 서안 부분 철수를 내년까지 완료할 계획인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의 권력 공백과 이에따른 무장세력의 발호를 가장 우려하고 있다. 이때문에 이집트측에 제한적 양보를 조건으로 가자지구 치안 역할을 넘기려 하고 있다. 그러나 아라파트의 급서로 그 준비과정은 대폭적인 단축이 불가피해졌다. 동갑의 나이임에도 아라파트에 대해 증오와 살의(殺意)를 감추지 않았던 아리엘샤론 이스라엘 총리는 모든 테러공격의 책임을 아라파트에게 씌웠던 편리함을 잃게됐다. 그는 이제 하마스, 지하드와 직접 싸우든가 가자지구에서 빨리 떠나든가 택일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직면하게 됐다. (카이로=연합뉴스) 정광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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