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한 공무원의 우울한 자화상
정승량 사회부기자 schung@sed.co.kr
정승량 사회부기자
고(故) 김선일씨의 피살소식이 전해진 지난 23일 노동부를 출입하는 기자의 시선은 김씨의 유족이 국내법으로 보상받을 수 있을지에 쏠렸다. 그러나 이번 일을 처리하는 한 공무원의 태도에 실망감을 감추기 어려웠다.
김씨와 같은 근로자가 업무상 재해로 사망했을 경우 현행 국내 노동법만을 기준으로 유족들이 보상받는 방법은 두가지뿐이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과 근로기준법이 규정한 유족보상이 그것이다. 김씨 살해소식에 국방부도 외교통상부도 아닌 노동부가 관련 조문을 찾아 유족보상 방안을 궁리하기 시작한 것도 이런 이유이다.
산재법은 업무상 사망의 경우 해당근로자의 1일 평균임금의 47%에서 최대 67%까지 연금형태로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또 근로기준법은 이와 별도로 일일 평균임금의 1,000일분을 주도록 규정하고 있다.
단 전제조건이 붙는데 김씨가 소속됐던 회사가 국내법인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안타깝게도 외교부와 노동부가 현재까지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파악한 결과 김씨가 일했던 가나무역이 국내법인이 아닌 요르단에 등록된 법인인 것으로 잠정 확인돼 김씨 유족들은 현행 산재법과 근로기준법에 따른 보상은 한푼도 받을 수 없는 처지다.
비슷한 사례를 찾기 위해 기자가 노동부에 수소문해 오무전기 사건을 맡아 유족보상을 처리했던 공무원을 찾은 것은 이런 안타까운 마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고위 공무원의 첫 말에 기자는 말문이 막혔다. “지금 내 일도 처리 못해서 머리가 아프다. 그런 일에 답할 여유가 없다. 나는 지금 그 일을 떠났다. 지금 그 일을 맡고 있는 담당자를 찾아서 알아보라”는 말을 남겼고 그는 전화를 끊었다.
전화통화였으니 그가 처한 상황을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공무원에게도 일의 완급과 우선순위라는 게 있다.
이 대목에서 마틴 루터킹의 발언이 스쳐갔다. “거리의 청소부라 불리는 사람이 있다면 미켈란젤로가 그림을 그리고, 베토벤이 음악을 연주하고, 셰익스피어가 시를 쓰듯이 그도 거리를 쓸어야 한다.” 자신의 직업이 사소하기 그지없는 일상일지라도 최선을 다하면 그가 곧 그 분야에서 미켈란젤로이고 베토벤이고 셰익스피어라는 게 그의 얘기다.
이 공무원에게 되묻고 싶다. “오무전기 보상 처리과정에서 당신의 경험이 아들을 잃어 비탄에 빠져 있는 김씨 유족에게 조그만 도움을 줄 수도 있지 않냐고….”
입력시간 : 2004-06-24 16: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