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외환위기나 근년의 신용카드 상황은 우연한 일이 아니라 온 국민과 당국자들에게 공통인 `화끈한 국민성`에 기인한 필연적 결과다.
증시만 봐도 외국인 지분율은 40%를 넘었고 회전율은 최고, 선물거래는 최대를 기록하고 있다. 인터넷과 휴대전화 사용률도 세계 최고이고 이혼율도 최고, 출산율은 최저 수준인 것은 모두 국민성 때문이다.
이런 현상들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생활이 바뀌고 의식구조가 바뀌어 가고 있는데 이 큰 변화의 중요성을 우리 사회는 간과하고 있다. 환란 극복 과정에서 발전적 개조가 풍미하다 보니 가치관에 혼란이 생기고, 자신이 없다 보니 글로벌을 내세운 각종 정책에 대한 다각적 검토가 소홀해 지고, 급기야는 `국민의 은행`이라 할 은행 대주주의 60% 이상이 외국인이 되어도 모두가 무감각해져 있다. 시장에서 취득했으니 OK다. 관치만 아니면 OK다.
애초부터 `시장원리`에는 가치관이나 윤리의식이 없는 것이 원칙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세밀한 사회적 장치가 필요하다.
6.29 이래 우리 사회는 만민평등이고 모든 것을 시장과 여론에 맡기는 방임형 구조가 되고 있다. 그간 우리 지식층들은 `관치`만 탓했지 이를 대체할 장치에 대해서는 무관심했고 이것이 오늘의 결과를 야기했으며 이대로 지속될 경우 어떤 내일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
시장원리에만 의존하고 장치를 방임하려는 생각이 훗날 역사적으로는 이 시대의 집단적 착각이라는 검증을 결과할 지도 모른다. 일부 부동산과 주식에 관한 버블이 일부 집단의 착각에 연유함과 마찬가지다.
`글로벌`에 관해 어느 세계 석학이 “각종 경제사안에 대한 통제력과 의사결정권이 갈수록 국가에서 글로벌 차원으로 이전하고 있다. 종전에는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던 사안들이 속속 어느 누구도 통제할 수 없고 책임 있게 돌볼 자가 없는 글로벌 차원으로 변해 버렸다”고 통찰한 것은 음미할 가치가 있다. 권한이 글로벌 차원의 시장으로 이관되어 갈수록 국내 행정이나 주권의 문제는 차츰 실체가 없어지고 유권자 표의 힘도 행사할 대상이 없어지고 종국에는 국가의 개념도 변환되는 게 아닐까.
국내적인 통화정책, 외환정책이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날이 언제까지 일까. 글로벌 시대에 외환보유고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1,500억달러의 보유고를 고민하는 정책은 얼마나 영원할까. 돈(자본)은 조국을 모른다는 서양 속담이 있고, 이미 돈의 이동에는 국경도 시간도 없어진 지 오래인데 정치ㆍ경제ㆍ사회가 폐쇄적인 한반도에서 정부나 중앙은행의 사고는 이를 얼마나 쫓아 가고 있는가.
사회주의에서 시장경제를 택하여 전환해 가는 독립국가연합(CIS)국가나 동구국가, 중국에 가보면 종전의 저가격 경제체제가 상당히 지속적인 인플레 과정을 지내면서 시장가격화하는 현장을 듣거나 목도할 수 있다.
환란위기로 이 땅의 주요 기업과 대형 건물들이 언젠가는 글로벌 가격이 될 텐데도 폭락한 값에 외자의 손으로 넘어 갈 때, 필자는 저 후진국들의 경우와 비교해 보며 결코 남의 일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자금이다. 지난 98년 이후 각종 통화량지표는 2~3배 팽창했고 국제수지와 외환보유고도 무척 좋아지고 국내 부동자금이 400조원이라 하는데도 국내 투자자는 아파트와 부동산, 채권만 선호하는 사이에 국내기업을 대표하는 증시의 기업들은 외국인들이 주도하게 되었다. 모두가 국가의식은 젖혀둔 채 오직 수익률만 추구한다 하는데 결국 그 수익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게 아닌지. 그 기업이 한국 땅에 있기만 하면 된다는 극단적 사고가 부지불식간에 만인의 생각이 된 것일까.
물론 우리 투자자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기업경영이 투명해 지고, 오너가 자금을 좌지우지하지 아니하고, 기업 스스로 경쟁력을 높여 투자자들에게 수익과 배당으로 보답해야 하는 업그레이드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현재 상황에서도 외국인들은 한국증시를 호재로 보고 있지 아니한가.
어떤 외국인 이코노미스트는 오늘 한국의 현상을 `발전과정의 고통(growing pain)`이라 말하고 있다. 증시의 모든 여건이 완전히 충족되길 기다리다 보면 한국 투자자들에겐 그림의 떡이 된 후의 얘기가 될 우려도 있다.
필자는 가끔 이런 얘기를 한다. 세계 최강의 축구선수들을 심판 없이 운동장에 풀어 놓으면 어떤 게임이 될까. 차가 오가는 도로를 횡단할 때 서너살 짜리를 부모가 손잡고 이끌지 아니한다면 어찌 되며, 스무살 짜리를 손잡고 건네준다 하면 무어라 할 것인가.
이제 가치관을 정돈하고 각 국가운영 주체들이 나서서 우리 시장을 방관하지 않고 제대로 운영해 나가도록 하는 지혜를 모을 때다.
<양만기 투자신탁협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