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서민 금융이용자 보호대책을 마련한 것은 최근 사회문제로까지 비화되고 있는 비제도권의 악덕 대출관행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대책의 핵심은 ▦부당한 사금융 근절과 ▦선의의 신용불량자 구제에 있다.
◇배경= 출발선은 외환위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구조조정의 칼날과 무더기 부도사태는 중산층을 자부하며 왕성한 사회활동을 해오던 직장인, 자영업자들을 길거리로 내몰았다. 길거리 인생들에게 신용의 풍성함이 있을 리 만무였다. 불황의 그늘 속엔 신용이 취약해 제도권금융으로부터 푸대접을 받는 억울한 인생들이 그득하게 숨어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제도권금융은 외환위기이후 제 살길을 찾기에도 벅차 대출 기준을 잔뜩 높여놨다.
사채업자들은 이틈을 놓치지 않았다. 턱없이 높은 금리를 요구하고 채권회수를 위해 공갈 협박을 일삼았다. 연리 1만%가 넘는 억지 대출도 횡행했다. 국제통화기금(IMF)권고로 지난 98년 1월 연40%이상의 대출을 못하게 하던 이자제한법도 폐지되어 이를 막을 수 있는 장치도 없어졌다.
때를 만난 사금융업자들은 빌려준 돈을 되받기 위해 폭행을 일삼고 담보로 매춘과 장기를 요구하는 비정함을 드러냈다. 사채업자들의 협박에 못 이겨 불과 몇십만원에 집을 빼앗기도 야반도주를 하거나 정신병자에 걸린 서민들이 줄을 이었다. 극단적인 방법으로 자살을 택한 억울한 인생들도 많다.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제도권금융을 이용할 수 없는 신용불량자는 지난 97년말 149만명에서 지난2월 현재 232만명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나 있다. 어쩔 수 없이 비제도권의 사채에 의존해야 하는 사람수가 많아졌다는 뜻이다. 이 과정에서 사채업자들의 무리한 각서 요구, 공갈, 협박, 폭행이 검버섯처럼 자라났다는 게 재경부의 분석이다.
피해를 호소하는 사례도 급증했다. 금융감독원에 이달2일 설치된 사금융 피해신고센타에는 보름만에 529건이나 접수됐다. 그냥 내버려둘 수 없는 상황이었다.
◇주요 내용 = 당정은 신용불량자로 낙인 찍혀 억울한 피해를 받고 있는 사람들을 최대한 구제하고 사채업자들을 양성화시켜 통제가 가능한 제도권으로 최대한 근접시킬 계획이다.
연체금을 갚은 선의의 신용불량자들의 불량기록은 내달 1일 은행연합회에서 모두 삭제된다. 금감원은 개별 금융기관이나 신용정보업자가 자체 보유한 불량 기록도 함께 삭제되도록 지도할 예정이다.
특히 부당한 채권 추심, 고리대금행위에 대한 단속은 전례없이 크게 강화된다. 금감원의 사금융 피해신고센타에 접수된 사례에 대해서는 검찰, 경찰, 국세청, 공정위, 금감원이 합동 단속에 나선다.
그러나 사기ㆍ결탁 등 부정한 방법으로 대출을 받거나 금융사기 등의 범죄를 저지른 악의적 신용불량자에 대한 관리는 더욱 강화된다.
신용카드도 카드대금의 변제능력이 있다고 객관적으로 증명되는 사람들에 대해서만 발급된다.
소득이 없으면 신용카드를 발급받을 수 없게 된 셈이다.
지나치게 높은 연체이자율을 적용하는 카드사는 공정위로부터 강력한 제재를 받게 된다.
당정이 추진하고 있는 금융이용자보호에 관한 법률(가칭)은 사채업자들을 양성화하기 위한 고육지책의 일환이다. 정부는 원래 대금업법을 새로 만들어 사채업자들을 제도권안으로 끌어들이려 했으나 부작용을 우려해 등록 의무화로 방향을 바꾸고 대출 이자에도 상한선을 정할 방침이다.
박동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