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출 위기에 몰린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가 19일 장고(長考)에 들어갔다.최 대표는 오전에 “생각을 정리하겠다”며 부인 백영자씨와 함께 서울 압구정동 자택을 나섰다. 홍사덕 총무는 “이틀 예정으로 행선지를 알리지 않고 떠났다”고 전했다. 최 대표는 서울 근교에 머물면서 당 움직임을 지켜 보며 거취에 대한 최종 입장을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최 대표의 지방행에 대해선 “시간 벌기를 위한 전략적 후퇴 같은데 또 한 번 실수한 것 같다”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호랑이 없는 숲을 차지한 반최 세력들이 더욱 기세등등해질 것” “천하의 최틀러가 분란을 피해 도망친 모양새가 됐다” 는 등의 말도 나왔다.
한 측근은 “아름다운 퇴진을 위해 기다리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 어떠한 수를 둬도 지도력을 회복할 수 없으며 정치적 생명이 사실상 끝났음을 본인도 알고 있을 것”이라며 “다만 지금 당장 떠밀려서 물러나는 치욕만은 피하려는 의도 같다”고 말했다.
이를 반영, 최 대표의 선택에 대해선 20일 오후께 귀경해 대표직은 유지하되 선대위에 모든 당무권한을 넘기고 자신은 2선으로 후퇴하는 안을 발표하는 게 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우세하다. 한 핵심 측근은 “정치인과 당 대표로서 원칙을 철저히 지켜 온 자신이 희생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게 대표의 생각”이라고 전했다.
그는 “지금의 침묵은 대단한 결단을 예고하는 것이 아니다”며 “자신이 꺼낼 수 있는 모든 카드에 대해 일일이 경우의 수를 따져 보고 치밀하게 판단하는 것이 원래 대표의 스타일”이라고 전했다.
한 당직자는 “대표는 당내 움직임을 일일이 보고 받고 있다”면서 “우려했던 지도위원과 상임위원들의 무더기 사퇴가 이뤄지지 않고 영남권 의원을 중심으로 한 의원 30여 명이 대표 살리기에 나섰다는 소식을 듣고 일단 대표직 유지쪽으로 방향을 잡을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표 살리기 모임에 참석한 한 중진 의원조차 “의원들이 제 잇속에 따라 대표를 식물인간으로 놔둘 것이냐, 사망선고를 할 것이냐를 놓고 논란을 벌이는 마당에 대표가 들고 나오는 카드가 과연 먹히겠느냐”고 우려할 정도로 상황은 간단치 않아 보인다.
<최문선 기자 moonsu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