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 한 통에 천 원









한 통에 천 원이덕규 作

뒤늦은 재혼 단체맞선 자리처럼 재래시장 구석 노점에 일렬횡대로 늘어선 끝물 수박통들

꼭지가 말라비틀린

그 시들시들한 얼굴들을 이리저리 굴려보던 중년의 여인들이 얼결에

무작위로

황혼의 짝을 찾아 들고 가듯이

덜렁덜렁

소복이 부은 손아귀를 파고드는 나일론 끈에 매달려가는 머리통이 문득, 면목 없다


비록 숱 하나 없는 대머리일지라도 한 통에 천 원이면 그게 어디유? 자식들 눈치 보랴, 재산 보랴, 체면 보랴 여간 어려운 일 얼결에 잘 치렀수. 봐유, 문 열자 자식들 서로 나와 새 아버지 받아 모시지 않수? 저런! 아들은 가운뎃손가락 구부려 딱밤을 멕이고, 손주는 다짜고짜 손바닥으로 찰지게 이마를 쳐도 둥글둥글 웃으니 분명 어느 성현의 수제자가 총각 장가온 게 틀림없수. 꼭지는 말랐어도 겉은 푸른 기상이요, 속은 붉은 태양 머금고 있다우. 황혼 결혼에 운수대통하겠수. 그런데, 나일론 끈처럼 옥죄던 노름꾼 술꾼 바람꾼 신랑 다 견디고도 저 무던한 양반과 백년해로는커녕 전 남편과 의기투합 식탁 단두대에 올리는 까닭을 나는 단연코 모르오.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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