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대한민국 산업지도가 바뀐다] 산업논리 무시한 구조조정, 화 부른다

업종·시장상황 고려 않고 금융논리로 밀어붙이면 산업 경쟁력만 훼손 우려

기업 간 구조조정이 활발해지는 가운데 최근 영업부진으로 채권단의 관리를 받고 있는 해운과 철강업종 등은 정부가 칼자루를 쥐고 새 틀을 짤 채비를 하고 있다.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협의체를 통해 경기부진에 노출된 업종들에 대한 구조조정 플랜이 만들어지고 있다.

기업들 역시 업종 내의 출혈경쟁을 막고 자원을 집중하기 위해 정부가 일정 역할을 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추진 과정에서 정부 부처 간 이해조정이 제대로 되지 않는데다 각 산업이 처한 환경과 특수성을 무시한 채 금융 논리만 들어 무리한 구조조정을 강제하는 움직임이 생기면서 자칫 산업 경쟁력만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불거져나온 국내 양대 해운사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합병설이다.

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합병설은 두 회사를 합치면 경영 효율성이 높아진다는 데 전제를 두고 있지만 실상 두 회사와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는 시너지가 없다며 반대하고 있다. 두 회사는 컨테이너선이 주력이고 노선이 상당 부분 겹친다. 대형 해운사는 국내가 아닌 세계 각국 해운사들과 경쟁한다는 점에서 합병으로 노선을 축소하면 그만큼 한국이 처리하는 물동량이 감소하게 된다. 또 한진해운은 CKYHE, 현대상선은 G6로 해운 얼라이언스(동맹체) 소속이 달라 합병 시 한쪽 동맹체에서 빠질 수밖에 없다. 두 회사 모두 재정여건이 좋지 않아 규모가 비슷한 상대방을 인수하는 데 부담도 크다. 해운사 채권단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인수 업체에 세제나 선박펀드 등 인센티브를 주지 않고서는 합병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해운업계는 앞서 지난 1999년 정부가 강제로 부채비율 200%를 고수하는 바람에 강제로 선박을 내다 판 것도 현 위기의 한 원인인 만큼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이 또다시 악순환을 불러오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하고 있다. 과거 선박을 없앤 뒤 호황이 찾아오자 해운사들은 물동량 처리를 위해 비싼 값에 배를 빌려야 했고 현재까지도 이익의 상당 비중을 용선료로 낸다. 해운업계의 한 관계자는 "두 회사가 합병해도 높은 용선료는 해결이 안 돼 재무구조 개선 효과가 떨어진다"며 "차라리 정부가 선박펀드를 활성화해 해운사에 배를 빌려주면 용선료를 아껴 해운사도 살고, 배를 만드는 조선소도 살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산업은행이 주도한 동부그룹 구조조정 역시 실패작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동부그룹은 2013년 11월 2조7,000억원 규모의 자구계획을 발표한 뒤 산은 주도로 동부제철 인천공장과 동부발전당진 지분을 묶어 팔려던 계획이 실패하며 자구안이 꼬이기 시작했다. 이후 동부 계열사들의 신용등급이 하락하며 그룹이 위기에 빠졌고 동부와 산은 간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김준기 동부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정책금융기관이 주도하는 구조조정에 기대를 걸었지만 패키지딜 실패와 자산 헐값 매각 등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며 서운한 감정을 정면으로 드러냈다.

정부가 부채비율 등 수치만을 앞세워 무리한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데 대한 쓴소리도 나온다.

장세욱 동국제강 부회장은 지난달 말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특정한 기준에 따라 무 자르듯 기업을 분류해 구조조정을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업종과 국내 시장 환경에 따라 각 기업의 사정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임의적 잣대로 구조조정 대상 기업을 가릴 것이 아니라 기업의 자구 노력과 회생 가능성을 면밀하게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허수영 롯데케미칼 사장도 지난 9월 기자간담회에서 "고순도테레프탈산(PTA), 페트패키징레진(PPR·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 등 공급과잉 품목은 구조조정을 해야 하지만 민간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할 수 있게 정부에서 자리를 마련해주기를 바란다"며 정부의 과도한 개입을 경계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산업계도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충분히 느끼고 있다"며 "정부는 기업 구조 개편을 돕는 '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원샷법)' 통과에 주력하는 등 기업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기반 마련에 충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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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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