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통일·외교·안보

A국 한국 무관부 암호장비 도난, 정말 문제 없나?

정부 “암호체계 유출 가능성 전혀 없다” vs “암호체계·군사기밀 유출 우려”

정말 문제는 없는 것인가. 뒤늦게 확인된 A국 주재 한국 대사관의 암호장비 도난의 후폭풍을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군은 부작용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이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

문제로 떠오른 암호장비의 명칭은 ‘NX-02R’로 일종의 팩스밀리 장치다. 대사관 무관부에서 평문을 비문으로 만들어 전송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수신받을 때 평문으로 전환해 문서를 읽을 수 있는 성능으로 알려졌다. 적성국가의 손에 장비가 유출될 경우 국가 보안에 구멍이 뚫릴 수도 있는 장비다.


◇언제 어떻게 누가 잃어버렸나=분실 당사자를 정확하게 따지면 대사관이 아니라 대사관 무관부 소속의 국방과학연구소(ADD) 파견 요원. 장비가 설치되고 운용된 장소도 A국 소재 ADD 사무실이다. 그러나 ‘언제와 어떻게’는 오리무중이다. 알 길이 없다. 이 장비가 대사관 외부의 ADD 현지 사무소에 설치된 시기는 2011년. 마지막으로 이 장비가 사용된 것은 작년 6월 3일로 조사됐다. 없어진 사실을 인지한 시점은 지난해 10월 14일. 현지에서는 이를 이틀 뒤 본국에 보고했으나 문제는 언제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도난인가 분실인가= 정부는 ‘분실’로 규정하고 있으나 ‘도난’의 성격이 강하다. 경비원도 있고 잠금 장치까지 있는 암호장비가 ‘분실’될 턱이 없다. 누군가 일부로 작심하고 경비가 허술한 틈을 타 잠금장치를 해제하고 가져간 이상 ‘도난’이 확실해 보인다. 누가 가져갔는지 역시 오리무중이다.


◇국가 비밀 유출 가능성은?= 정부는 두 가지 이유에서 비밀이 유출됐을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첫째는 자동 삭제 기능. 정부 관계자는 “문제의 암호장비는 (암호체계 파악을 위해) 개봉하는 순간 광센서가 감지해 암호 키를 자동으로 삭제하도록 돼있다”며 “암호체계가 유출됐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자신하는 두 번째 이유는 도난 사실을 보고받은 직후 종류가 같은 암호장비를 사용 중지하고 전량 회수해 암호체계를 바꾸는 등 보안조치를 거쳐 다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여기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개봉 순간 암호 키가 자동삭제된다지만 우리보다 높은 기술을 지닌 세력이라면 삭제를 피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암호 체계를 바꿨어도 일단 한번 뚫린 암호의 알고리즘은 보다 쉽게 해독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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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외교부도 책임져야= 사실이 밝혀진 뒤 징계는 그야말로 솜방망이다. 국정원과 국군기무사령부, 국방정보본부 등은 사건 직후 조사를 벌였으며 ADD는 담당 직원 1명을 징계 처분했다. 당초 중징계 대상으로 분류됐으나 과거 국방과학기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상대적으로 가벼운 감봉 1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진짜 문제는 이 사건이 발생할 수 밖에 없었던 구조적인 문제가 있었다는 데 있다. 마지막 사용 후 4개월이 더 지나서야 없어진 사실을 인지하기까지 ADD 직원은 인근 국가들을 발로 뛰며 군사정보 수집에 나섰다. ADD는 외교부와 국방부에 평소부터 ‘암호장비까지 운용하는만큼 다른 국가에 파견된 ADD 사무소처럼 대사관 내부로 사무소를 옮겨달라’는 건의해왔으나 묵살된 것으로 알려졌다. 인원 부족과 사무공간 미확보가 사건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얘기다. 국방부나 외교부도 여기에서 원론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는 입장이다.

◇예산 낭비 공방도= 불필요한 장비를 위험한 지역에 배치했다는 자성론도 일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사라진 암호장비는 작년 한해 동안 테스트를 포함해 겨우 3차례 사용됐고 2012∼2013년 2년 동안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다”며 “평소 거의 사용하지 않는데다 담당 직원도 외부 출장이 잦아 관리가 소홀했던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사용 빈도가 낮은 장비를 굳이 도입한 데 대한 설명이 필요한 대목이다.

권홍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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