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시각] 로봇 PB가 가져올 변화


"에이, 겨우 수천만원 굴리려고 하는 사람인데 프라이빗뱅커(PB)들이 거들떠나 보겠어."

최근 기자가 만난 지인은 최근 정기예금이 만기가 돌아와 3,000만원 정도의 목돈이 생겼다며 돈을 어떻게 굴려야 좋을지 물어왔다. 그에게 증권사나 은행의 PB를 만나 상담을 받아보라고 권하자 이런 말이 돌아왔다. 소액(?) 자산가들이 느끼는 PB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다.

최근 금융투자업계에 이런 벽을 허물 수 있는 신기술이 등장했다. 바로 핀테크 산업 중 가장 주목받는 로보어드바이저(robo-advisor)다. 로보어드바이저는 로봇(robot)과 투자자문가(advisor)의 합성어로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을 이용한 자동 맞춤형 자산관리 서비스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자산, 목표 수익률, 투자성향 등을 입력하면 컴퓨터가 상장지수펀드(ETF)를 비롯한 다양한 금융상품들로 포트폴리오를 짜준다. 그야말로 '로봇PB'인 셈이다. 사람이 아닌 컴퓨터 소프트웨어가 자산배분 전략을 짜기 때문에 사실상 모든 고객에게 서비스를 할 수 있고 운용수수료도 자산 규모의 0.4~0.5%로 '인간PB서비스'의 4분의1 정도로 저렴하다. 자산관리 대중화시대를 열 첨병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로보어드바이저가 가장 활성화돼 있는 곳은 미국이다. 에임사를 비롯해 10여곳에서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마이프라이빗뱅킹 등에 따르면 로보어드바이저 시장은 지난해 말 190억달러에서 올 상반기 210억달러로 커졌고 오는 2017년 867억달러에 이어 2020년 4,518억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NH투자증권·대우증권·삼성증권·하나은행 등 국내 증권사들과 은행들도 국내외 로보어드바이저 전문 회사들과 제휴를 맺고 시스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르면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는 국내에서도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가 선보일 예정이다.

물론 '로봇PB'가 만능은 아니다. 과거의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을 활용하기 때문에 예측 가능한 박스권 장세에서는 유용하지만 금융위기나 특정 이벤트에 따라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주가 흐름에는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다. 또 '인간PB'가 제공하는 세금·상속·부동산 등 종합적인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기에도 한계가 있다. 특히 세상에 선보인 지 얼마 안 된 신기술인 만큼 수익률 등에 대한 검증도 부족하고 자산관리 자문 서비스 수수료에 대한 인식 변화도 필요하다.

이 같은 한계에도 '로봇PB'와 '인간PB'의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인간PB'는 대중성과 싼 비용으로 무장한 '로봇PB'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무기를 개발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일자리를 빼앗기는 신세를 면하기 어렵다. '인간PB'는 '로봇PB'의 한계를 집중적으로 공략해야 한다. 과거 숫자와 데이터에 의존한 분석과 전략이 아닌 경제 흐름과 이슈의 영향을 정확하게 짚어내는 분석능력을 길러야 한다. 또 투자자들이 '로봇PB'보다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데 동의할 만한 특화된 서비스도 장착해야 한다. 자산관리 시장에 등장한 '로봇PB'의 도전이 이끌어낼 변화에도 큰 관심이 쏠리지만 '인간PB'의 응전이 가져올 진화에도 눈길이 가는 이유다.

/김민형 증권부 차장 kmh204@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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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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