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르포-혼돈의 브라질 경제] 적막한 상파울루 백화점 "한국 가전매출 절반으로 줄었어요"

정치불안·헤알화 추락에 경제 불황 직격탄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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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경기 상황이 나빠지면서 상파울루 시내에 위치한 이지에노폴리스백화점 가전제품 매장에 손님들의 발길이 끊겼다. /박재원기자


'월드컵 효과'는 없었다. '2014브라질월드컵'이 끝난 후 1년여가 흐른 19일(현지시간) 브라질 상파울루 시내는 각국 유니폼을 입은 관광객으로 형형색색 물들었던 모습 대신 피켓을 든 청년들이 거리를 장악했다. '더 이상 우리가 일할 곳은 어디에도 없다'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젊은 남녀 수십 명이 왕복 6차선 도로를 가로막았지만 주변을 지나던 경찰은 늘 있는 일인 양 무심히 지나쳤다.

정치불안과 헤알화 추락에서 시작된 불길이 좀처럼 진화되지 않으면서 브릭스(BRICs)의 한 축을 담당해온 브라질 경제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현지 언론에는 '강력사건으로 하루 평균 106명 사망' '교도소 또 폭동' 등 흉흉한 기사들이 난무한다.

올해 브라질 신규 고용률은 15년 만에 가장 낮다. 청년들이 거리로 뛰어든 이유도 여기에 있다. 빌라 길예르미씨는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 임기 동안 브라질 경제는 최악으로 추락했다"고 불만을 감추지 못했다.

브라질 경제의 어두운 그늘은 시내 곳곳에서 묻어났다.

상파울루 시내에 위치한 이지에노폴리스백화점은 온종일 한산했다. 중산층이 밀집한 동네에 있는 유명 백화점이지만 고객들은 윈도쇼핑만 할 뿐 굳게 닫힌 지갑을 열지 않았다. 삼성·LG 등의 전자제품을 판매하는 가전제품 전문매장 '패스트숍(FAST SHOP)'은 10명 남짓 직원들이 한가하게 수다를 떨고 있을 정도로 손님들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간혹 매장을 찾은 고객들은 물건을 구매하지 않고 잠시 둘러보다 빠져나갔다. 지오마르 리오스 패스트숍 매니저는 "삼성전자와 LG전자 TV의 경우 지난해보다 판매가 절반으로 줄어 주말에 많아야 10대 정도 팔린다"며 "손님 발길은 줄었고 백색가전은 판매량이 급감했다"고 설명했다.

브라질 현지 의류사업을 이끌고 있는 한인들도 불황의 직격탄을 맞았다.

한인거리로 유명한 '봉헤치루' 거리는 한국인이 이끌어온 브라질 섬유산업의 상징이다. 50년 전 브라질에 터를 잡은 한인들이 의류사업을 통해 성공적으로 뿌리내린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1년 전 이곳을 처음 방문했을 때만 해도 활기 가득했던 거리는 셔터가 내려진 가게들이 눈에 띄게 늘었고 패션거리답지 않게 칙칙했다. 교포 박현도씨는 "높은 권리금을 내고서라도 서로 매장을 차리려던 곳이었는데 최근 들어 매장 40%가 문을 닫았다"며 "옷가게를 하던 사람들이 작은 식당을 차리거나 다른 일을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수입차 전시장들은 입구마다 신차 대신 중고차를 앞에 전시해 놓았다. 기존에도 전시장에서 중고차 거래가 함께 이뤄졌지만 중고차를 사려는 고객이 늘면서 주객이 전도됐다. 브라질에서 가장 많은 차를 판매하는 수입차 브랜드 '피아트'의 상파울루 한 매장은 지난해 월 400대까지 판매되던 차량 대수가 지난달 120대로 급감했다. 대신 중고차 거래는 100대 이상 늘었다. 매장 직원은 "지난해 월 40대씩 혼자 팔았는데 지난달 12대로 줄었다"면서 "본사에서 무이자할부를 지시할 만큼 상황이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현지 전략 차종으로 브라질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는 현대자동차 역시 올해 판매목표를 100만대 이상 줄였다. 현대차의 한 관계자는 "브라질 시장 전체 산업 수요가 줄면서 올해 판매목표를 조정할 수밖에 없다"며 "다른 브랜드처럼 공장 생산인력을 줄이고 있지는 않지만 수입 판매하는 차량의 경우 72%에 달하는 관세를 물어야 하기 때문에 소득은 줄고 차량 가격대는 높아져 판매에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동국제강이 브라질 현지에 54억6,000만달러를 투입해 공사 중인 제철소도 공정률 90%에 멈춰 있다. 브라질의 국가신용등급이 투자부적격(BB+)으로 강등되는 등 악재가 겹친데다 경기침체로 수요가 예전만 못해 공장이 완공되더라도 정상 가동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현지 관계자들은 귀띔했다.

2015년 현재 브라질 경제에 관련된 모든 수치는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올 성장률 전망치는 -3%로 지난 2009년 이후 6년 만에 가장 낮다. 올해 7월 기록한 9.56%의 물가상승률은 11년 만에 가장 높다. 자동차산업 수요는 전년 대비 24%나 줄면서 GM·폭스바겐 등 현지공장은 구조조정이 한창이다. 공장 가동률은 55%에 머물러 있다. 브라질 헤알화 가치가 1달러당 4헤알에 육박하면서 1인당 소득은 4년 만에 반 토막이 났다. 불안한 치안과 팍팍한 살림에 젊은 부유층 사이에서는 "더 이상 방탄차를 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겠다"며 미국으로 투자이민을 떠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영선 KOTRA 상파울루 무역관장은 "정치불안에서 시작된 경제침체가 브라질 전체에 퍼져 있다"면서 "현지 진출을 계획 중이던 한국 기업들도 브라질 리스크가 커지면서 진출을 망설이고 있다"고 밝혔다. /상파울루=박재원기자 wonderful@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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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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