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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천재와 미치광이… 종이 한장 차이

■ 미쳤거나 천재거나(체자레 롬브로조 지음, 책읽는귀족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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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거나 천재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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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자 존 내쉬(1928~2015), 음악가 로베르트 슈만(1810~1856), 철학자 니체(1844~1900). 세 사람을 하나로 묶는 공통 고리가 있다. 첫째, 사람들은 이들을 '천재'라고 부른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실제 모델이기도 한 존 내쉬는 1994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게임이론의 완성자다. 슈만은 19세기 낭만주의 음악을 이끈 독일의 대표 음악가로 피아노협주곡, 사육제 같은 명작을 남겼다. 내용은 몰라도 이름은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니체는 생철학의 대표자이자 실존주의의 선구자다.

첫 번째 공통점이 '천재'라면, 두 번째 공통점은 역설적이게도 '미친 자로서의 불행한 삶'이다. 이들은 천재성의 양면처럼 붙어 다닌 다양한 병적 증상 때문에 행복하지 못했다.

존 내쉬는 정신분열을 앓았고, 지난 5월 불의의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슈만은 23세부터 우울증에 빠져 여러 해 동안 '정신병 수용소로 끌려 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다 자살까지 시도한다. 이따금 베토벤과 멘델스존이 무덤에서 들려주는 음악을 받아적기도 했던 그는 본에 위치한 사설 보호소에 수용된 채로 숨을 거두었다. 니체 역시 말년에 광기에 휩싸여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쳤다.

1888년 이탈리아에서 출간, 화제를 불러 모았던 책은 천재와 천재성에 대한 방대한 정보를 쏟아낸다.

천재성을 설명하고 밝혀내는 다양한 수식어 중 눈에 띄는 것은 단연 '퇴행'이다. 저자는 인류사 속 수많은 천재를 분석한 다양한 연구를 통해 "천재들은 때론 미치광이보다 훨씬 다채로운 퇴행의 징후를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한다.

오늘날의 기준에선 '차이'로 받아들여지는 작은 키, 왼손잡이 등을 책에선 퇴행으로 분류하며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같은 고대 철학자부터 에라스무스, 스피노자, 모차르트, 베토벤 등을 퇴행 증상을 지닌 천재로 소개한다. 말더듬이, 구루병, 불임, 그리고 정신병에 이르기까지. 익숙한 이름은 물론 낯선 이름의 다양한 천재를 퇴행 증상별로 나눠 간략하게 사례로 정리했다.

또 유럽 국가별 음악인 수와 인구 백만 명당 배출된 음악인 수 같은 연구 조사를 바탕으로 기상학적 현상이 천재들의 활동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연구 결과 인구가 집중되고 온화한 기후에 해양지방이면서 산악지역의 경우 음악인 배출 확률이 높았다.

500페이지 넘는 분량의 책은 특정 요인과 그에 해당하는 천재의 사례를 덧붙이는 방식을 반복한다.

이렇다 보니 책의 3분의 1을 지나는 시점부터는 뻔한 형식과 끊임없이 열거되는 천재(저자가 어떤 기준으로 이들을 천재라고 부르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름에 싫증이 난다. 특히 '천재는 피를 타고 흐른다'(천재성의 유전)거나 '천재성은 여성을 피해갔다'(성별에 따른 영향)는 다소 파격적인 내용은 그 어떤 논리적인 근거 없이 '이 인물은 이랬다' 식의 예시만 늘어놓아 공감할 수가 없다.

저자는 천재를 '궤도 잃은 유성과 같은 존재'라고 말한다. 천재의 광기가 시대적 분위기와 맞아 떨어지면 역사 속에 편입되는 운명을 맞이하고, 아니면 정신병원으로 가는 신세가 된다는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이 한마디를 위해 수백 명의 천재를 열거하고 또 열거했구나' 하는 생각에 힘이 빠진다.

책의 보도자료는 '방대한 지식과 문화적 배경, 역사적 통찰력이 이 책을 빛낸다'고 말하지만, 책 속에서 방대한 사례 말곤 문화적 배경이나 역사적 통찰력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게 아쉽다. 2만 5,000원. /송주희기자

sso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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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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