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헬무트 슈미트


1977년 10월18일. 헬무트 슈미트 독일 총리는 지하 벙커에서 소말리아에 투입된 특수 부대의 군사작전을 가슴 졸이며 지켜보고 있었다. 특공대는 아랍 테러리스트에게 납치된 민항기 루프트한자에서 191명의 민간인 전원을 무사히 구출하는 데 성공했고 슈미트는 마침내 안도의 눈물을 흘렸다. 훗날 슈미트는 군 복무를 마치고 아내와 재회했을 때를 포함해 두 번밖에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며 만약 작전이 실패했다면 총리직에서 물러날 각오였다고 회고했다. 슈미트는 루프트한자 테러 사건을 계기로 국민에게 불의에 굴하지 않는 강인한 인상을 심어줬고 위기 해결사로의 리더십을 굳히게 됐다.

슈미트가 총리를 맡았던 1970년대 독일은 안팎으로 시련에 직면해 있었다. 그는 경제난 타개를 위해 수출진흥책을 펼쳤고 소득 재분배나 사회보장정책을 담은 사회적 시장경제를 적극 도입했다. 그가 여론조사마다 '독일의 양심'으로 꼽힐 만큼 국민의 존경을 한몸에 받은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슈미트는 원칙과 소신을 고집하다 불신임 투표에서 물러나기도 했지만 정계 은퇴 후에도 언론인으로 활동하며 30여권의 저서를 집필하는 등 지식인으로도 명성을 쌓았다.

애연가였던 그는 금연법이 시행된 2008년 함부르크 극장에서 줄담배를 피우다 금연단체로부터 고소를 당한 적이 있다. 그는 국민에게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언론의 질책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정치인들은 전문 분야에서 모범이 돼야 하지만 삶의 모든 분야에서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이다. 대중들이 그의 입장을 전폭 지지했음은 물론이다. 2008년에는 아흔 번째 생일을 앞두고 '바흐를 연주하다'라는 음반을 발매할 정도로 예술가로의 재능을 과시했다. 지난해 1월 함부르크에서 95회 생일 축하연을 가진 슈미트 전 총리가 10일(현지시간) 타계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슈미트는 하나의 정치기관 자체였다"며 그의 업적을 기렸다. 우리에게 지혜의 등불을 비춰줄 현인이 더욱 그리워질 듯하다. /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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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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