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수능 한파


고등학교 3학년 당시 대학입시 학력고사 시험 당일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고사장까지 걸어간 적이 있었다. 버스로 5~6 정거장이나 하는 거리였지만 걷다 보면 긴장이 풀리겠지라는 생각에 행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금방 후회가 물밀듯 밀려왔다. 영하로 뚝 떨어진 기온과 매서운 바람으로 귀는 떨어져 나갈 듯했고 온몸은 꽁꽁 얼어붙었다. 너무 추웠지만 이미 뱉은 말이 있어 버스를 타자는 얘기를 끝내 못했다. 그 탓에 시험이 끝난 후 며칠간 지독한 감기에 시달려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미련한 짓이기는 했지만 덕분에 고사일 당일의 기억은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대학 입시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기습 한파다. 예전에는 영상 10도가 넘는 날씨가 계속되다가도 대입 시험일만 되면 어김없이 온도계가 영하로 곤두박질치는 경우가 허다했다. 지난해에는 한파주의보가 발령됐고 어떤 때는 -9도까지 내려가기도 했다. 오죽하면 '시험 볼 때 졸지 말라고 추운 날씨만 골라잡는다'는 우스갯말까지 나왔을까. 하지만 요즘 들어 사정이 달라졌다. 최근 10년간 서울 지역이 영하로 떨어진 적은 2006년(-0.4도)과 지난해 2년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낮 최고 기온이 12도를 웃돌았다. '수능 한파'라는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입시일만 다가오면 강추위를 떠올리는 것은 우리가 '대입 실패=인생 낙오'의 공포 등식에 얽매인 탓 아닐까. 경쟁 우선·성적 만능의 사회는 영상의 기온도 영하로 느끼게 만드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수능일(12일)이 이제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지난해에는 서울의 경우 -3도까지 떨어지며 8년 만의 강추위를 기록했지만 올해는 아침 최저 영상 6도, 낮 최고 14도로 춥지 않은 하루가 될 것이라고 한다. 짧게는 1년 이상 입시 준비로 힘들었을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추위에 떨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다.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아낌없이 쏟아내 부디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기를 바란다. 수험생 파이팅! /송영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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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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