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시각] 기업하기 좋은 나라, 대한민국


우리나라의 기업 환경을 저해하는 요소로는 강성 노조와 규제가 단골손님처럼 꼽힌다. 이 때문에 노사관계와 규제 요소를 제외하고 실시된 세계은행(WB)의 지난 10월 말 기업환경평가에서 한국은 전 세계 189개국 중 4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런 결과에 대해 정부는 "기업활동 관련 제도 측면에서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했음을 평가받았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반면 정치·경제적 상황과 노사관계 등을 반영하는 세계경제포럼(WEF)이나 국제경영개발원(IMD)의 기업효율성평가를 보면 한국의 순위는 각각 26위와 37위로 추락한다.

최근 정부의 정책을 보면 '기업 하기 좋은 나라'에 역행하는 새로운 요소가 추가된 듯하다. 기업들의 준(準)조세 부담이다. 며칠 전 국회에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농어촌상생기금을 신설한 것이 대표적이다. 민간 기업들의 자발적 기부로 매년 1,000억원씩 10년 동안 1조원의 기금을 마련해 농어촌 장학 사업과 의료·문화 지원, 주거 생활 개선에 쓰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자발적 기부방식으로 연간 1,000억원씩 과연 모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결국은 기업들에 강제적으로 할당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뿐만이 아니다. 정부는 9월 청년 일자리 창출 지원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민간 기금인 청년희망펀드를 조성하겠다며 기부를 받고 있다. '관제' 논란 가능성을 우려해 개인 명의의 기부를 받는다고는 하지만 기업인들이 앞다퉈 출연한 수백억 원의 사재는 사실상 회삿돈이라고 봐야 한다. 10대 기업이 부담한 금액만 1,00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청년 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 정책을 마련하는 대신 기업들 옆구리 찔러 모은 기금으로 뭘 어떻게 해보겠다는 심산이다.

창조경제혁신센터 역시 지역별로 대기업에 강제 할당을 해 10여개의 주요 기업이 수백억 원을 부담해 만들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도 기업을 대상으로 후원금을 모금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2월 대기업 대표들을 청와대에 초청한 자리에서 "경제계에 적극적인 평창올림픽 협조를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이후 대기업들은 각각 500억원 이상의 후원을 약속했다. 정부가 돈 필요한 일만 생기면 마치 맡겼던 돈 받아내듯이 기업에 손을 벌리고 있는 것이다.

전 세계의 많은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기 위해 기부 등 다양한 사회공헌활동(CSR)을 하고 있다. 하지만 공익 차원에서 각 기업의 판단에 따라 이행하는 것이지 정부 시책에 필요한 재원을 분담하기 위해 강압에 못 이겨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은 기업 하기 좋은 나라가 아닌 정부가 기업에 '삥 뜯기' 좋은 나라는 아닌지. 내년 각종 기관들이 우리나라의 기업환경평가에 과연 몇 점을 줄지 기대된다.

노희영 정치부 차장 nevermind@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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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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