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기업이 해외에서 100억원 규모의 공사를 수주하면 설계비로 5억~7억원 정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우리가 7억원 규모의 건축 설계를 수출하면 그 열 배가 넘는 100억원 이상의 추가 수출 길이 열리게 됩니다. 설계를 수출하면 설계자가 설계도서에서 의도한 바에 따라 기술·시공·자재 등이 자동으로 따라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건설에 종속된 설계를 벗어나야 건축설계 산업이 진정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습니다."
조충기(사진) 대한건축사협회 회장은 최근 서울 서초동 건축사회관에서 가진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건축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을 통해 건축 산업의 근본적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회장은 지난 1월 대한건축사협회 설립 50년 만에 첫 직선제로 치러진 선거에서 당선돼 3월 제31대 회장에 취임했다. 그는 전국 1만여 건축사들이 직접 뽑은 첫 회장인 만큼 업계의 변화와 혁신은 물론 국민에게 다가가고 국가경제에 이바지하는 건축을 만드는 데 주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우선 건축 산업의 발전을 위해 제값을 받는 설계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금처럼 일단 설계비부터 깎고 보는 풍토에서는 국내 건축 산업의 경쟁력 확보가 요원하다는 것이다.
조 회장은 "미국의 경우 '건축 서비스를 위한 발주 및 계약제도'가 있어 아이디어 간 경쟁을 통해 설계를 선정한 뒤 시공 입찰로 단가를 조정하는 구조"라며 "설계는 그 자체로 결과물이니까 단가 경쟁을 하지 않고 대신 시공 단가 경쟁으로 조절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런데 우리나라는 설계·시공 일괄 입찰(턴키) 방식으로 아이디어 싸움이 아닌 단가 싸움을 조장하고 있다"며 "턴키 구조에서는 참여 업체들이 기술력이 아닌 단가로 승부할 수밖에 없고 이러다 보니 시공하기 쉬운 건물만 늘고 창의성은 갈수록 떨어지는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이 같은 제도에서 성장한 국내 건축사가 세계적인 건축사로 성장하기 어려운 만큼 정부 차원에서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건축사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 역시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게 감리제도다.
조 회장은 "감리는 설계 의도가 현장에서 제대로 구현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일인데 우리나라 감리 업무는 안전관리와 규정에 맞는 자재 사용 등 시공에 관한 것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며 "이런 것들은 건축사가 아닌 시공자가 스스로 해야 할 일들"이라고 말했다.
또 "현재 건축 현장에서 사고가 났을 때 허가권자는 책임을 지지 않고 건축주가 고용한 감리자가 고스란히 책임을 진다"면서 "가장 혜택을 많이 보는 시공업자도 수익을 남기고 사라져버리면 그만"이라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가령 감리를 제대로 진행하면 3.3㎡당 500만원의 공사비가 들고 감리를 대충하면 300만원이 든다고 가정할 경우 대부분의 건축주는 공사비가 적게 드는 건축사를 고용하는 게 현실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처럼 건축주에 예속된 감리에서 벗어나 허가권자가 감리자를 지정하게 해야 객관성 있고 공공성이 확보되는 감리가 가능해진다고 조 회장은 강조했다.
조 회장은 또 지방자치단체나 대기업들이 추진하는 대규모 건축 프로젝트에서 국내 건축사들이 소외당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했다. 국내 건축사들이 외국 건축사에 버금가는 실력을 갖췄음에도 랜드마크 건축물의 설계를 외국 건축사가 독식하는 현상은 '문화적 사대주의'가 근본에 깔려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의 설계는 이라크 출신 영국 건축사인 자하 하디드가 맡았고 123층으로 국내 최고층 빌딩인 롯데월드타워의 설계는 미국 업체인 KPF가 수행했다. 조 회장은 "국내 건축사들이 디자인·기술력 등 모든 면에서 외국 건축사보다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국내 건축사에게도 외국 건축사처럼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국내 건축사들의 작품을 인정하는 풍토를 조성해야 국내에서도 세계적인 스타 건축사가 나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그는 "건축사법에 따르면 외국 건축사는 국내 건축사와 함께 업무를 수행해야 하지만 국내 건축사는 기본 계획이 완료된 후 실시설계만 수행하고 있는 실정"이라면서 "지자체는 선도적 행정을 해야 하며 기업은 법 규정을 제대로 지킬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신진 건축사 발굴을 위한 제도 개선의 필요성도 역설했다. 그는 설계 용역 시 과거 실적 등에 대한 평가를 통해 사업자를 선정하는 '사업수행능력평가(PQ)'제도와 관련해 "설계 실적이 없는 신진 건축사에게 실적을 갖고 오라고 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얘기"라며 "그간 PQ제도에 익숙해 신진 건축사를 못 키워온 만큼 향후 건축사법 개정을 통해 신진 건축사를 보다 대우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또 신진 건축사 육성을 위해 현상설계 방식의 개선 및 금융 지원도 절실하다고 밝혔다. 그는 "실제와 똑같은 모형을 만들고 화려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현재의 현상 공모는 당연히 비용이 많이 드는 만큼 설계 아이디어만 제출하는 제안 현상을 늘릴 필요가 있다"며 "이후 선정된 신진 건축사에게는 금융 지원을 통해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것을 도와주면 된다"고 말했다.
아울러 건축 분야 연구개발(R&D) 투자 확대도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조 회장은 "정보기술(IT) 등 서비스 분야는 물론 건설 분야도 R&D 투자가 일부 이뤄지고 있지만 건축 및 설계 부문의 R&D 투자는 거의 없는 실정"이라며 "공격적인 R&D 투자를 통해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조 회장은 첫 직선제 회장으로서 각종 건축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겠다고 밝혔다. 그는 "앞으로는 서울역 고가도로나 초고층 롯데월드타워 건설 등의 문제를 지켜만 보는 게 아니라 협회가 이에 대한 전문가적인 견해를 분명하게 밝히겠다"며 "단 비판적 견해를 내놓는 게 아닌 전문가로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분명히 했다.
He is … 기자명 |
건축정보 신속하게 공유 '모바일 시스템' 구축할 것 '국민이 행복해하는 건축' 최우선 |
/정리=이재용기자 jylee@sed.co.kr
사진=송은석기자
대담=이종배 건설부동산부장 ljb@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