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살이었다. 공연을 앞두고 "노래 한 곡 할 때마다 힘들어 죽겠다"고 걱정하던 사람은 정작 막이 오르자 무대 위를 물 만난 고기처럼 헤엄치고 다녔다. 1930년대 대중음악 장르인 만요(漫謠)를 엮어 만든 음악극 '천변살롱'에서 주인공 '모단' 역을 맡은 배우 황석정 이야기다.
천변살롱은 이름도 낯선, 뜻을 굳이 풀면 '질펀한 노래'인 만요로 극을 끌어가는 모노드라마다. 1930년대 경성의 천변살롱을 배경으로 그곳에서 가수와 영화배우의 꿈을 키우는 '모단'의 삶과 그녀의 사랑이 펼쳐진다. 만요는 일상생활의 소소한 내용을 가사에 담은 일종의 코믹송으로, 이번 작품에선 뮤지션 하림과 4인조 살롱밴드의 라이브 연주로 '오빠는 풍각쟁이', '나는 열일곱 살이에요' 등 대표 만요 15곡을 선보인다.
황석정은 연극 무대에서 잔뼈 굵은 배우답게 안정적인 연기를 펼쳐낸다. 관객과 놀 줄 아는, 아닌 관객을 놀게 하는 그의 능수능란함은 단연 돋보인다. 주목할 것은 그녀의 노래. 연극에서 노래를 부른 적은 있어도 90분간 15곡의 노래를 부르며 연기를 펼치는 경험은 그에게도 처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석정은 간드러진 고음과 묵직한 저음을 넘나들며 다양한 음색을 선사한다. 때론 타령의 느낌으로, 때론 재즈나 가곡의 분위기로 만요를 소화하는 그의 독특한 창법은 만요만의 맛과 멋을 제대로 살려낸다.
황석정은 이 작품을 통해 바라는 게 딱 한 가지라고 했다. "제가 엄청난 기량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은 아니라고 봐요. 그저 힘든 일 많았던 2015년을 보내며 노래와 대사, 저라는 존재에 관객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전하고 싶어요." 그의 바람은 어느 정도 이루어진 것 같다.
하림이 음악감독 겸 연주자, '심지어' 배우로 활약한다. 보는 이가 더 어색한 그의 연기는 극 후반부로 갈수록 탄력을 받아 빛을 발한다. 가수 호란이 모단으로 함께 캐스팅됐다.
"음악은 날 황홀하게, 꿈꾸게 만들어요." 사랑스러운 여자 모단 덕에 1930년대 짧지만 화려했던 '모던의 정취'를 물씬 느끼고 돌아간다. 12월 27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1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