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차르봄바


공상과학 영화 '혹성탈출' 시리즈에는 땅속에서 핵폭탄을 마치 신처럼 떠받들며 모여 사는 돌연변이 인간종족이 등장한다. 이들은 침팬지의 공격에 맞서 싸우다 모조리 죽음을 맞는데 영화 속 주인공 테일러는 마지막 수단으로 핵폭탄의 버튼을 눌러 지구라는 별을 완전히 사라지게 만든다. 그가 모래에 파묻혀 윗부분만 간신히 드러낸 자유의 여신상을 보고 이 혹성이 지구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절규하던 마지막은 지금도 명장면으로 남아 있다. 강대국들의 끝없는 군비 경쟁이 결국 인류 멸망을 초래하고 말 것이라는 엄중한 경고 메시지를 담고 있었던 셈이다.

1961년 10월30일. 옛소련 서북쪽 콜라반도의 한 비행장에서 투폴레프 Tu-95 폭격기 두 대가 이륙했다. 폭격기 한 대에는 무게 27톤, 길이 8m의 초대형 폭탄이 실려 있었다. 폭격기는 노바야제믈랴 제도의 북극권 해상 4㎞ 상공에 폭탄을 터뜨렸고 빛은 멀리 수 천㎞ 떨어진 곳에서도 관측됐다. 지금까지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강력한 폭탄으로 불리는 '차르봄바(Tsar Bomba)'였다. 실제 '폭탄의 제왕'이라는 이름 그대로였다. 차르봄바 실험 뒤 폭탄 화구의 지름은 8㎞에 달했고 버섯구름은 에베레스트의 7배 높이인 64㎞까지 치솟았을 정도였다. 100㎞ 바깥에서도 3도 화상에 걸릴 정도의 열이 발생하고 후폭풍에 휘말려 1,000㎞나 떨어진 핀란드의 유리창이 깨지기도 했다고 한다. 이 핵실험은 미국과의 핵무기 경쟁에서 소련의 우위를 과시하기 위한 선전용 목적이 컸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이 새해 벽두부터 수소폭탄 실험에 완전히 성공했다고 자랑하고 나서 전 세계를 경악하게 만들고 있다. 국제사회와 고립되면서 경제난까지 극심해지자 허약한 독재체제를 지키기 위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도박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그토록 소중하다는 인민이 매일 굶주리는데도 남들이 부러워하는 핵무기를 갖게 됐다며 우쭐대는 독재자를 보노라면 핵폭탄을 숭배하다 결국 자멸의 길을 선택한 영화 속 돌연변이 인류의 모습이 저절로 떠오른다.

/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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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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