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권홍우의 오늘의 경제소사]항공모함의 탄생




1911년 1월 18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만. 민간인 조종사 유진 엘리(24세)가 조종하는 복엽기(날개가 두개 달린 비행기) 한 대가 해면을 스치듯이 날더니 외항에 정박 중인 1만 5,381톤짜리 순양함 펜실베니아호의 임시 갑판에 사뿐히 내려 앉았다. 엘리는 이미 두 달 전에 같은 비행기로 이륙에 성공했던 마당. 착륙까지 마친 이날은 항공모함 탄생 기념일과 진배없다.

항공모함은 처음 등장하게 됐지만 그 발상은 처음이 아니었다. 1806년 영국 해군은 소형 프리키트 범선에서 나폴레옹을 비난하는 프랑스어 유인물을 기구 풍선에 달아 날려 보냈었다. 오스트리아 해군은 1849년 이탈리아전쟁을 치르며 폭탄을 단 소형 기구를 군함에서 띄워 날리는 작전을 구사했으나 바람이 반대로 부는 통에 실패했던 기록이 있다. 남북전쟁에서 남부 해군도 ‘풍선 모함’을 운영했으나 실패로 끝났다.


20세기 들어 라이트 형제에 의해 동력비행기가 발명(1903)됐어도 항공 이착륙 실험에 대해 사람들은 의구심을 보냈다. 당장 함상 이착륙에 사용된 ‘커디스 D 형 복엽기’의 성능이 못 미더웠다. 요즘 웬만한 소형승용차보다 출력이 작은 50마력짜리 단발 엔진에서 나오는 힘으로 시속 80㎞ 이상으로 날아야 실속(失速)해 떨어지지 않고 비행고도를 유지할 수 있는 상황. 반면 속도를 내면 활주갑판을 넘어서 바다에 빠질 위험도 컸다. 대안은 혁신에서 나왔다. 꼬리 부분에 고리(tailhook)를 단 것. 민간조종사 겸 서커스 단장인 휴 로빈슨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착함 고리는 최첨단 항모와 전투기까지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라이트 형제가 동력비행기를 발명한 지 만 7년 2개월 만에 함상 이착륙 시험까지 마치자 각국은 항공모함의 가능성에 눈을 돌렸다. 영국이 상선을 개조한 어거스호를 제작하고 미국도 석탄운반선 랭글리를 항공모함으로 뜯어고쳤다. 일본은 처음부터 항모로 설계한 호쇼를 1922년 선보여 세계를 놀라게 만들었다. 같은 시기에 진행된 워싱턴 군축회의 결과로 주력함인 전함의 보유와 건조가 제약을 받자 항모 수요는 더욱 늘어났다.


보조함이나 전함 건조에 따른 국제적 감시를 피하는 수단으로 인식되던 항모가 해전의 주인공으로 떠오는 계기는 태평양전쟁. 일본이 항모부대를 동원한 진주만 기습에 성공하고 산호초·미드웨이해전에서 항모를 적극 운용한 미국은 승리를 따내 불리했던 전세를 역전시켰다. 대항해시대 이후 2차 대전 초까지 이어온 거함거포주의도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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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모가 세계를 지배하는 기류에 너도나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만 문제는 돈. 미국의 최신 핵추진 항공모함인 제럴드 포드급(11만톤)은 건조비만 104억 달러가 넘는다. 항모의 펀치력인 전투기는 물론 전자전기와 정찰기, 급유기와 헬기에 미사일 등 무장, 기름을 채워 넣는데도 건조비에 상승하는 비용이 들어간다.

뿐 만 아니다. 유사시 항공모함은 제 1의 목표물이 되기에 호위함정이 많아 따라 붙는다. 10만 톤이 넘는 핵 추진 항모 한 척에 이지스 구축함 2~4척, 공격용 핵 잠수함 1~2척, 보급함 등이 붙는 미국의 항모 전단 하나를 제대로 꾸리려면 건조비의 3배에 이르는 비용이 필요하다. 운용비도 막대하다. 돈이 없으면 항공모함 보유는커녕 운용 유지도 힘들다.

초대형 항공모함을 유지하는 유일한 국가인 미국은 항모전단을 10개나 운용 중이다. 세계 총생산(WGDP)의 22%를 차지하는 미국이 세계의 국방예산과 비교한 비중은 약 45%인 반면 전세계 해군 예산에서 미 해군의 비중은 63%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군사적으로 미국을 곧 넘어설 것 같았던 구 소련도 항공모함 만큼은 미국 중형 항공모함의 규모와 성능이 미치지 못했다.

항모를 추가로 보유할 가능성이 짙은 나라로는 중국이 손꼽힌다. 중국은 초대형 항모 건조에 도전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로 평가된다. 일본 역시 군사적 족쇄에서 풀려난다면 항공모함 보유를 추진하고 나설지도 모른다. 한국에서도 항모 보유론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무기 확보 경쟁의 그늘을 동아시아 3국의 재정이 견뎌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권홍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co.kr

권홍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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