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세계 금융시장이 중국의 경기둔화와 국제유가 하락 등으로 요동치면서 글로벌 대형 금융회사들의 구조조정 움직임이 한층 빨라지고 있다. 아시아지역 역시 사업재편이 불가피하고 지난 몇년간 시장정체로 부진한 실적을 거둔데다 성장전망마저 밝지 않은 한국이 주요 타깃이 대상이 될 공산이 크다. 이 때문에 바클레이즈의 한국 철수는 글로벌 금융회사들의 '엑소더스 코리아' 신호탄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유럽계 증권사의 한 대표는 19일 "바클레이즈가 한국 사업을 포기하면 다른 외국계 금융사에서도 한국 금융시장의 수익성에 대해 따져볼 수밖에 없다"며 "중국이나 인도·동남아시아 시장과 비교해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 측면에서 회의적인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주요 글로벌 금융회사들은 자기자본비율 확충 등 강화된 금융규제에 발맞춰 사업과 조직을 축소하고 인원 역시 감축하고 있는 상태다. 골드만삭스는 올해 1·4분기 중에 채권 부문의 인력을 10% 줄일 계획이며 모건스탠리는 원자재·채권 분야에서 총 1,200명의 감원계획을 밝혔다. 독일 최대 은행인 도이체방크는 앞으로 5년 동안 3만5,000명의 감원과 함께 10개국의 시장에서 철수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러한 구조조정은 이미 국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미 영국계인 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은 지난 2014년 SC저축은행과 SC캐피탈을 일본계 대부업체 J트러스트에 매각했다. SC금융지주 산하의 계열사로 있던 SC증권은 SC은행의 자회사로 편입시켰다. SC은행 역시 지난해 11월 전체 임직원 중 18%에 해당하는 961명을 특별퇴직 절차를 통해 내보냈다. 미국계 씨티그룹 역시 지난해 11월 씨티캐피탈을 아프로그룹(러시앤캐시)에 팔면서 국내 시장 철수설이 불거지기도 했다. 씨티캐피탈의 노조의 강한 반발에 매각 절차를 마무리하기도 순탄치 않은 상황이다.
투자은행(IB)업계에서도 외국계 증권사들은 한국 사업 비중이 줄이고 있다. 도이체방크의 서울 증권 지점(도이치증권)은 지난해 하반기에 인수합병(M&A) 분야 임원 2명이 법인카드 비용처리 규정을 위반한 문제로 중징계를 받게 된 것을 계기로 조직 규모가 크게 줄었다. 호주의 맥쿼리그룹도 지난해 한국 IB 사업을 대폭 축소했다. 캐피털과 증권·자산운용 사업 등을 벌이고 있는 맥쿼리는 캐피털 회사 내 M&A 자문 부문에 대해 구조조정을 하면서 캐피털의 인프라 및 부동산 자문, 증권의 리서치와 트레이딩 업무만 남겨뒀다. 맥쿼리는 아시아지역의 사업전략을 새롭게 짜는 과정에서 부진을 겪어온 국내 IB 부문을 줄인 것으로 알려졌다. 네덜란드계 ING증권을 인수하면서 출범한 싱가포르의 BOS증권은 적자폭이 수십억원 규모로 늘어나자 아예 증권업 인가증을 반납하기로 했다.
외국계 금융회사들의 철수 움직임을 금융당국도 파악하고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입장이다. 금융당국의 한 고위관계자는 "상당수 외국계 금융회사들이 수익을 제대로 못 내거나 현지화가 어렵다는 결론을 내린 지역의 사업을 정리하고 있다"며 "올해 국내 시장이 어려울 것이기 때문에 '내핍 경영'을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대신 새로운 업체를 국내로 끌어들이기 위해 인허가 절차를 속도감 있게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올해 1월부터 인도계 은행 SBI가 서울에서 영업을 시작했고 이에 앞서 지난해 12월에는 중국 12위권의 광대은행이 인가를 받았다. 이에 따라 국내에 진입한 중국계 은행은 총 6개로 미국계(5개)보다 많아졌다. 동남아지역 금융회사들의 국내 진출도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이들 금융회사들이 자금력이나 글로벌 네트워크 측면에서 한국을 떠나는 미국·유럽계 금융회사들을 대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최순영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 연구위원은 "최근에는 미국·유럽계 대형 금융사가 빠진 자리를 해외 진출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는 중국·동남아 업체가 메우는 추세"라며 "국내 금융시장에서의 적절한 현지화 전략과 수익원 발굴이 성공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민구·최용순·서민우기자 mingu@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