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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임종룡 금융위원장의 취임과 함께 시작된 금융개혁이 내달이면 1년을 맞는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금융개혁이 일궈낸 성과는 결코 작지 않다. 23년 만의 인터넷전문은행 도입, 22년 만의 보험 가격 완전 자율화, 11년 만의 거래소 개편 등 해마다 반복되기만 할 뿐 영영 풀리지 않을 것만 같던 금융개혁의 해묵은 과제들을 과감하게 털어낸 의미 있는 시도가 이뤄졌다.
그러나 개혁의 일부는 여전히 시도에 머물러 있거나 반쪽짜리 결실에 그치고 있다. 금융개혁 과제들이 시행되기 위해 필수적인 법 개정 작업이 국회의 벽에 가로막히면서 개혁의 취지가 희석되거나 좌절될 위기를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는 정부의 약속을 굳게 믿었던 애꿎은 금융업계와 소비자만 혼란을 겪게 된 셈이다.
서울경제신문이 최근 금융계 종사자 1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답보 상태에 처해 있는 금융개혁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었다. 금융계 종사자들은 금융개혁을 위한 당국 실무자들의 노력 여부에 대해서는 78.6%가 체감하고 있다고 답해 상당히 후한 점수를 줬지만 규제 완화 정도를 묻는 질문에는 절반에 가까운 응답자(44.7%)가 별로 완화되지 않았거나 거의 완화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한 줄로 요약하자면 "금융당국이 노력은 하고 있지만 규제 완화는 아직 체감할 수 없다"는 얘기다.
31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현재 국회 통과가 필요한 금융개혁 법안은 기업구조조정촉진법과 서민금융생활지원법, 대부업법 및 은행법과 주택금융공사법 등 10여개에 이른다. 이 가운데는 여야 합의를 끌어낸 사안도 있지만 여전히 여야 간 이견이 커 법 통과가 불확실한 것들도 있다.
핀테크 육성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인터넷전문은행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해 금융당국은 오프라인 지점이 없는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위해 2개의 시범사업자를 선정했다. 이 과정에서 금융위원회는 혁신적인 서비스를 위해서는 기존 금융권이 아닌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이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 같은 취지가 현실화하려면 비금융주력자의 은행주식 보유 한도가 4%로 제한돼 있는 현행 은행법 개정이 필요하지만 비금융주력자의 인터넷전문은행 주식 보유 한도를 50%로 확대하는 은행법 개정안 통과는 여야 간 격론으로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다음카카오와 KT 같은 비금융주력자 입장에서는 인터넷전문은행 시범사업을 주도하면서도 법적 지배력이 없는 상태로 불안한 시작을 해야 하는 것이다.
지난해 말로 일몰 된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은 법 개정 통과는 고사하고 한시 연장도 이끌어내지 못했다. 금융개혁의 한 축이기도 한 한계기업 구조조정이 심각한 차질을 빚게 된 것이다. 금융당국이 서둘러 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채권금융기관 운영협약을 만들었지만 구속력 없는 협약으로 원활한 기업 구조조정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금융권의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편에서는 정치권이 금융개혁을 집어삼켰지만 금융당국은 번번이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임 위원장은 금융권 가격 불개입 원칙을 천명했으나 이 같은 약속은 카드 가맹점 수수료 논란 앞에서 맥을 못 췄다. 영세·중소가맹점 법정 수수료를 0.7%포인트 인하했음에도 정치권은 시장에서 가격을 결정하는 일반 가맹점 수수료까지 인하하라고 압박의 수위를 높였다. 결국 정치권과 당국 양쪽의 눈치를 보던 업계는 일반 가맹점 수수료 인상 방침을 철회한다고 밝혔다가 다시 원칙을 지키겠다고 입장을 바꾸는 갈지자 행보를 보였다.
한 곳에서 다양한 서민금융 서비스를 종합적으로 제공하기 위해 추진한 서민금융생활지원법 역시 국회에서 오랜 진통을 겪고 있다. 신용회복위원회와 미소금융·국민행복기금 등 곳곳에 흩어져 있는 서민 금융지원 기능을 한데 묶어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자는 취지로 2013년 입법이 추진됐지만 지금까지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다. 임 위원장이 공식 석상에서 서민금융진흥원 출범을 위한 정치권의 지원을 호소했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가자 임시방편으로 서민금융종합센터 설립을 먼저 추진하는 상황이 빚어졌다. 그나마 최근 여야가 가까스로 합의에 도달했으나 대출과 채무조정 기능을 한곳에 둘 경우 이해 상충의 우려가 있다는 지적에 따라 신용회복위원회는 독립 유지를 하는 방안으로 방향을 틀어야 했다.
금융권은 금융당국이 개혁을 위한 환경 조성에 보다 공을 들여야 개혁의 완성도가 높아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당장의 성과에 매달리기보다는 심도 있는 당정 소통과 관련 주체 간 사전 조율작업이 우선돼야 금융권은 물론 시장과 소비자가 혼란을 겪지 않는 진정한 개혁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정영현차장(팀장)·윤홍우·김보리·양철민·박윤선기자 yhchung@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