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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에서 농산품 시장을 파격적으로 개방함에 따라 우리나라도 TPP 가입을 위해서는 농업시장의 추가개방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쌀 시장뿐 아니라 채소·과실류까지 시장까지 열리면서 국내 농가에 미치는 파장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일본은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시 상대국 공산품 시장을 열고 자국 농산품 시장은 걸어잠그는 전략을 써왔다. 하지만 TPP는 달랐다. 성역없이 농산물 시장을 개방한 것이다. TPP는 애초부터 농업 개방을 피하기는 어려웠다. 농업 강국인 미국과 캐나다·호주·뉴질랜드가 시장을 대부분 열어서다. 우리로서는 일본이 자국 내에서 민감한 농산품 시장을 얼마나 더 개방할 수 있는 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공산품 시장 추가 개방을 노리는 우리가 TPP에 가입하려면 일본의 개방 모델을 따라야 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은 TPP 협상에서 우리가 모든 FTA에서 개방을 안 했던 쌀을 미국과 호주에 연데 더해 감자와 고추·마늘·양파 등 채소류, 사과와 배, 감귤 등 과실류도 문을 열었다. 쌀에 버금가는 민감 품목인 3대 핵심 양념용 채소도 다 풀렸다. 일본이 일정 수입 물량에만 낮은 관세를 적용하는 저율할당관세(TRQ)를 통해 쌀 개방을 한다는 사실은 타결 전에도 알려졌지만 민감 채소·과실류까지 연 것은 우리 예상을 뛰어넘은 결과다.
더 큰 문제는 일본의 개방수준이다. 일본은 우리가 대부분의 FTA에서 양허대상에서 제외한 대두와 감자·닭고기에 대한 관세를 즉시 철폐하는 파격적인 개방을 택했다. 미국과의 FTA에서 제한적(15년 철폐)으로 열었던 고추와 마늘도 일본은 발효와 동시에 관세를 없앤다. 이와 함께 이제껏 병해충 문제로 수입을 사실상 막아놓았던 후지 품종 사과는 11년에 걸쳐 관세를 없애고 신고 품종 배의 관세는 발효 즉시 철폐하기로 했다. 일본은 감귤도 만다린·탠저린 종에 한 해 6년 안에 무관세화하기로 했다. 국내에서는 특히 사과와 배·감귤이 대부분 지역 특산물로 생산되고 있다. TPP 가입 때 이 품목들이 열리면 국내적인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TPP에 추가로 가입하려면 기존 12개 회원국 전부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처음부터 우리가 특정 농산품을 열지 않겠다는 자세로 나서면 가입 협의 자체가 불가능할 수 있다. 한 국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본이 즉시 철폐하기로 한 품목을 우리는 양허 제외하겠다고 하면 협상 자체가 성사되지 않는다"며 "즉시 철폐는 아니더라도 5년·10년 등 시간을 두고 철폐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고추와 마늘은 중국산이 이미 많이 들어와 있고 TPP 협상에서 열어도 큰 피해가 없을 것으로 전망되지만 미국과 호주·뉴질랜드 등이 강점을 보이는 과일은 어느 정도 피해가 예상된다"고 말했다./세종=구경우기자 bluesquare@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