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소공인 살리자] 취업난에도 청년 없는 동네공장… 수십년 축적기술 명맥 끊길 판

1부.기로에 선 소공인 <3> 빨간불 켜진 인력 수급

체계적 기술전수 미흡에 "비전 없다" 젊은피 외면

전문계高 출신 제조업 취업자 20년새 4분의1토막

견학→실습→인턴후 취업 등 산학협력 활성화 필요

소공인 기획9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소공인 집적지에 자리 잡은 한 업체에서 직원이 금속가공 작업과정을 살펴보고 있다. /권욱기자


"산학협력 차원에서 방학 동안 서울 독산동 소형 금형업체에서 일했는데 일을 배우기는커녕 박스 포장만 했어요. 대표랑 제대로 된 이야기도 못 나눴고 소공인에 대한 이미지만 안 좋아졌어요. 그렇다고 중간에 그만두면 다른 곳에 취업할 때도 불리할 것 같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동양미래대 정보통신과 취업준비생)

"몇십억원이나 되는 신형 기계를 들여왔는데 학교에서 구형 기계로 실습하고 한두 달 일 배우러 왔다는 학생들에게 당장 일을 해보라고 기계를 내줄 수는 없죠. 기계가 다 망가지면 우리도 손해가 막심하니까요. 상황이 이러니 학생들한테는 잡일밖에 시키지 못해 회의감을 느껴 떠나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강종범 금강프로세스 대표)

기술을 배우러 온 학생들은 잡일 하는 소공인 업종에서 비전을 갖지 못해 떠나가고 소공인들은 일할 준비도 안 된 학생들에게 무턱대고 일을 시키기도 어렵다. 소공인 생태계에 신규 인력이 유입되지 않는 이유다. 우리나라 기술교육 시스템이 현장과 동떨어져 있다 보니 인력 수요와 공급에서 미스매치가 발생한다.

김세종 중소기업연구원 원장은 "학교나 정부에서 지원하는 직업교육의 수준이 현장을 전혀 따라가지 못해 발생하는 일"이라며 "산학협력을 강화해 소공인들도 학생 교육에 일조할 수 있고 특성화 고등학교에 대한 취업역량 강화 지원을 점진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기술교육 시스템이 현장과 동떨어지다 보니 전문계 고등학교 출신의 제조업 유입 인력이 크게 줄어들고 있다. 4일 서울경제신문이 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 서비스의 교육연보를 집계한 결과 전문계고 출신 제조업 취업자는 지난 1993년 8만8,887명에서 2013년 4분의1 수준인 2만5,275명으로 줄었다. 전문계고 졸업생 자체도 27만2,541명에서 14만1,774명 수준으로 절반 이상 줄어들며 인력난은 갈수록 심해지는 모습이다. 이마저도 졸업 후 6개월 내 취업 사례를 조사한 것으로 실제로 중도이탈 없이 꾸준히 일하는 취업자는 훨씬 더 적을 것이라는 게 소공인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서울 청계천 철제골목에서 일하는 한 소공인은 "최근 1년 사이 이 동네에 5명 정도의 20대 청년이 새로 들어왔는데 모두 한두 달도 안 돼 높은 노동강도를 이기지 못하고 떠났다"고 전했다. 서울의 대표적 소공인 집적지인 문래동 역시 가업을 잇는 경우를 제외하고 20대 청년들이 일하는 기업은 손으로 꼽을 정도다. 청계천 철제골목의 한 청년 근로자는 "전문대에서 기술 분야를 전공한 친구들의 선택지는 항공사 정비, 부품제조 중소기업, 조선소, 소공인 기업 정도인데 대부분의 청년은 설사 지방이더라도 일단 큰 기업에 가고 보자는 심리가 강하다"고 전했다. 실제로 특성화고를 졸업한 청년들이 졸업 직후 소공인 기업에서 일을 시작해도 군대에 다녀오면 다른 업종으로 가는 경우가 태반이다. 남윤형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미 우리나라 산업의 패러다임이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넘어온데다 제조업에 대한 비전을 보지 못해 벌어지는 상황"이라며 "정부가 제조업 기피현상을 극복할 수 있도록 제조업체들의 위상을 회복시킬 다양한 방안들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소공인들의 의식변화가 문제해결의 시발점이라는 게 취업준비생들의 입장이다.

최규남 안양공고 교사는 "학생들은 취업 전 대부분의 기업을 사전탐방하고 급여조건도 수긍한 뒤 입사하지만 정작 지나치게 권위적인 문화와 욕설, 체계적인 기술전수 미흡 등에서 답답함을 느끼고 나오는 경우가 많다"며 "반면 작은 회사라도 대표가 창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수평적인 문화를 갖췄거나 교육에 적극적인 곳에는 학생들이 의외로 정착을 쉽게 하는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최근 시화공단의 소공인 업체에 입사한 한 학생은 "또래 친구들을 보면 급여나 근무환경보다는 지나치게 고압적인 문화 등을 견디지 못하고 나오는 경우가 많다"며 "우리 회사의 경우 업무를 상세히 가르쳐주고 선취업 후진학제를 통해 야간대도 다닐 수 있어 만족스럽다"고 소개했다. 반면 특성화학교에서 실기교사로 용접 업무를 가르쳐온 송정우 우정용접 대표는 "기계과 학생들이라 하더라도 밀링·선반기능·용접 등 기본적으로 배워야 할 게 많아 졸업 전 용접기능사 자격증을 따더라도 용접 하나만 놓고 보면 한달도 채 못해본 수준"이라며 "우리 회사는 반도체장비 등을 대상으로 초정밀 용접 능력이 필요한데 이처럼 기초만 갖춘 학생들에게 어디서부터 일을 맡겨야 할지 막막한 것은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박군종 동양미래대 교수는 "특성화고나 전문대 출신 학생들을 대상으로 '현장견학→실습→인턴 후 취업 결정' 등의 체계를 갖춘 산학협력이 활성화돼야 신규 인력 공급이 가능하다"며 "사물인터넷(IoT) 등 정보통신 분야에 능숙한 학생들이 프로젝트성 과제를 소공인들과 함께 진행하는 등 다양한 인적 교류 방안도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공인들은 지원정책의 사각지대에 있는 경우가 많은 만큼 획기적인 지원체계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박홍석 소공인학회 회장은 "중소기업에 병역특례를 도입했듯이 정부가 지정한 숙련기술자가 운영하는 소공인 기업에 한해 병역특례를 도입하고 인력수급이 시급한 업종은 해외 산업연구생들을 활용할 수 있는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강광우·박진용기자 pressk@sed.co.kr


관련기사



강광우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