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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35개가 입주해 있는 경기 분당의 한 학원 밀집건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3곳 중 1곳은 영어학원(어학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영어학원은 단 3곳만 남았다. 대부분 문을 닫았고 일부는 학교 내신을 대비하는 보습학원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초·중등생을 대상으로 하는 영어학원이 줄줄이 문을 닫고 있다.
14일 서울시교육청 등에 따르면 보습학원과 달리 듣기·말하기 등을 가르치고 공인어학시험을 대비하기 위한 영어학원은 서울에서만 2009년 1,200곳에 달했으나 지난해에는 870곳으로 급감했다. 영어 학원 3~4곳 중 1곳은 문을 닫은 셈이다.
한 학원 매매 전문업체 사이트에는 지난 1월 기준으로 영어학원 매물이 서울에서만 27건이 올라와 있다. 다른 학원 매물의 2배를 웃도는 수준이다. 학원 매매 전문가는 "영어학원 원생이 100명 이상만 돼도 대형학원으로 분류한다"면서 "입지가 좋은 영어학원의 경우 한때 학생 한 명당 권리금이 100만원이 넘는 곳도 많았지만 지금은 권리금을 받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학원을 내놓은 한 원장은 "희망 권리금을 3,000만원 정도로 내놓기는 했지만 사려는 사람을 구하기가 힘들어 권리금은 거의 포기했다"고 토로했다.
영어 학원이 급감하면서 대치동에서 이름을 날리던 강사들도 경기 성남, 일산, 수원 일대까지 원정 강의에 나서기도 한다. 한 학원 원장은 "이전에는 대치동 강사가 경기권까지 오는 일이 없었는데 이제는 흔한 일"이라며 "이들이 신도시로 진출하면서 이곳에 있는 영어학원들은 외곽으로 밀려가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그나마 남아있는 영어학원들도 생존을 위해 대부분 교과서 지문 암기, 무한 문제 풀이 등 내신 위주로 전략을 바꿨다. 특목고 합격을 강점으로 내세웠던 아발론 등 대형 프랜차이즈 어학원도 마찬가지다. 경기 분당에서 10년 넘게 영어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한 원장은 "아발론, G1230 등 대형 프랜차이즈 어학원도 최근 세가 크게 위축됐다"며 "내신 대비 외에는 영어 수요가 사라진 분위기다"고 말했다.
보습학원 외에 일반 영어학원의 이 같은 퇴조는 입시 정책이 바뀐 탓이 크다. 지난 2011년 외고 입시에서 지필고사를 없애고 중학교 내신 성적만을 반영하면서 영어학원의 인기가 시들해지기 시작하더니 대입에 반영하겠다고 했던 말하기, 듣기, 쓰기, 읽기 능력을 평가하는 국가영어능력시험(NEAT)까지 폐지되면서 수요가 급격히 줄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18학년도부터는 수능에서 영어과목이 절대평가로 전환될 예정이어서 문을 닫는 영어학원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황성순 외국어교육협의회장은 "어학 공부가 70∼80년대처럼 내신만을 위해 암기 위주로 바뀌고 있는데 따른 현상"이라며 "절대평가뿐만 아니라 의사소통 능력도 강화하는 방안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