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글로벌 현장에선] 아베 총리와 '여성이 빛나는 사회'

韓·日 사회상·성평등관점 비슷

친여성 정책·실천안 함께 찾으면 평화롭고 생산적인 공존 가능

한혜진 총영사

일본 아베 신조 총리의 정책 중에 '여성이 빛나는 사회 만들기'라는 게 있다. 총리관저 홈페이지는 그 취지를 '일본의 최대 잠재력인 여성의 힘을 통해 사회를 활성화하기 위한 것'이라며 '여성들이 안심하고 임신·출산·육아·간호를 할 수 있게 하고 채용과 승진 기회를 적극 제공하는 등 삶의 질을 높이도록 정책과 예산을 지원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여러 방면에서 거침없는 행보를 펼치고 있는 아베 총리가 여성이 빛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어떤 수완을 발휘할 것인지 필자는 줄곧 관심을 가져왔다. 제2차 아베 내각 출범 후(2012.12월) 첫 번째 개각을 단행하던 2014년 9월 6명의 여성의원(각료 5명, 당 집행부 1명)을 기용해 일본 최다 기록을 세우고 기업에 여성 임원 비율 30%를 달성하도록 촉구하는 등 여성 친화적 메시지를 적극 보낸 것을 보면서부터다.

아베 총리가 지난해 10월 제3차 내각 개각을 앞두고 내건 '1억 총활약사회'라는 것도 현재 1.42명(2014년 기준)인 출생률을 1.8명까지 끌어올리고 육아 때문에 이직하는 경우를 제로로 하기 위한 지원을 포함하고 있다.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생산 인구의 감소를 걱정하고 있는 일본에서 여성들을 생산현장에서 활약하게 하는 한편 마음 놓고 아이를 낳아 키우게끔 해 인구 1억명을 건강하게 유지하겠다는 발상은 일단 바람직해 보인다.

그러나 국민의 반응은 사뭇 미적지근하다. 정책의 구체성이 떨어진다, 여성 노동력의 60%를 차지하는 비정규직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등 다양한 지적이 있다. 30년 경력의 한 전문직 여성은 "3년 육아휴직을 가능하게 한다지만 복직해서도 커리어를 계속 추구할 사회적 기반 마련은 생각조차 않으니 립서비스 아니냐"며 강도 높게 비판한다.

사실 양성평등의 실현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북유럽을 제외한다면 세계 최고 수준일 미국마저도 여성이 직업현장에 대거 진출할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2차 대전 등 전쟁으로 동원되거나 전사한 남성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한 현실적 필요였고 그 후 반세기가 훌쩍 넘도록 분투한 결과, 여성의 평균임금이 남성의 80% 정도나마 따라잡았다.

한국과 일본은 고도산업화를 이뤘고 소득뿐 아니라 전반적 사회 문화수준도 무척 높은데 그런 나라치고는 양성평등의 관점에서 상당히 뒤처져 있다. 여성의 대학졸업 비율이 각각 48, 49%로 양질의 여성인재를 확보하고 있는 두 나라가 세계경제포럼이 매년 발표하는 젠더격차지수를 보면 100위에서 120위 사이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우등생과는 거리가 멀다.

물론 좋은 신호들도 있다. 한국 외교부만 해도 초임 사무관 중 여성 비율이 50~60%를 차지한 게 벌써 10년이며 법조계·언론계 등 전문직에 진입하는 여성 비율도 날로 높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는 동북아 최초로 여성 대통령을 배출했다. 일본도 경력 초기에서만큼은 여성 비율이 상당히 늘었다. 문제는 양성 모두에게 편안한 조직 문화를 만들고 승진에 대한 보이지 않는 천장을 없애며 누구든 자신 있게 도전할 수 있도록 응원하는 분위기를 튼튼하게 다져나가는 일이다.

한일관계 전문가들은 역사 문제와는 별도로 경제·안보·환경·원자력안전 등 분야에서 꼭 필요한 협력을 해나가자고 입을 모은다. 필자는 친여성 정책과제와 실천을 위한 협력방안도 함께 모색했으면 한다. 비슷한 어려움에 처한 양국의 전문가들이 힘을 합치면 더 좋은 해법이 나오고 선의의 경쟁도 될 것 같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이 높아질수록 국가 출산율이 높아지고 양성평등지수와 국가 경쟁력 및 국민행복지수는 비례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특히 가까웠다가도 한순간에 멀어지곤 하는 한일관계의 다양한 국면에서 더 많은 여성이 활동하게 되면 양국관계 또한 경쟁과 질시보다는 평화롭고 생산적인 공존으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한혜진 주 삿포로 총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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