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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 값의 60%가 넘는 유류세를 낮춰야 한다는 여론이 커지고 있지만 정부는 "절대 불가"를 외치고 있어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재(2월21일 기준)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1,355원. 이 중 휘발유 제품 가격은 319원(약 24%)에 불과하고 세금이 904원으로 약 67%를 차지한다. 주유소에서 5만원어치를 주유하면 3만원이 넘는 돈이 세금으로 나간다는 의미다. 정부가 유류세 인하 불가를 고집하는 이유로는 △유류세를 내리더라도 소비자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미미하다는 점 △부동산 경기 침체 등으로 불안한 올해 세수 문제 △내린 세금은 필요하더라도 다시 올리기 어렵다는 점 △기름 값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다른 국가에 비해 월등히 높지 않다는 점 등이 꼽힌다.
우선 '2008년 트라우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08년 3월 국제유가가 급등하자 물가안정을 위해 휘발유·경유 등에 매겨지던 유류세를 12월까지 한시적으로 10% 인하했다. 세수가 1조3,000억원 감소하겠지만 휘발유가 ℓ당 82원, 경유가 58원 내려가 가계 살림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당시 약발은 단 2주밖에 가지 못했다. 3월 첫째 주 리터당 1,688원이던 전국 보통휘발유 평균가격은 둘째 주 1,659원, 셋째 주 1,657원으로 소폭 내려가는가 싶더니 넷째 주 1,678원으로 반등하고 4월 마지막 주에는 유류세 인하 전 가격을 넘어 1,700원을 돌파했다. 주유소·중간유통상들이 유류세 인하분만큼 기름 값을 인하하지 않고 중간에서 수익을 가로챘고 여기에 국제유가까지 상승하면서 소비자들은 유류세 인하 효과를 체감하지 못했다. 반면 2008년 유류 세수만 전년에 비해 8~9% 감소했다.
올해 부동산 시장 둔화, 경제성장률 하락 등으로 세수 전망이 불투명한데 유류세라도 들어와야 '세수펑크'를 면할 수 있다는 속내도 숨어 있다. 세수펑크란 정부가 실제 거둬들인 세수가 예산안 편성 시 예측한 세수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경기가 나빴던 지난해 4년 만에 세수펑크를 면할 수 있었던 데는 유류세가 효자 역할을 톡톡히 했다. 지난해 전체 유류세는 24조원(에너지·석유시장 감시단 추정)으로 2014년(19조4,000억원)보다 23.7% 급증했다. 최근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2월15일 기준)이 86주 만에 하락하는 등 부동산 시장에 이상징후가 포착돼 양도소득세에서 들어오는 세수가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정부가 올해 예산을 짤 때 전망했던 경상성장률 4.2% 달성도 장담할 수 없어 전체 세수는 그만큼 줄어들 공산이 크다.
유류세를 내리면 나중에 올리기가 어렵다는 점도 이유다.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유류세를 낮춘다면 자동차 개별소비세 한시 인하와 같이 정부 재량으로 30% 범위 내에서 변경할 수 있는 유류세 탄력세율 한시 인하 방식이 될 텐데 나중에 정상화(인상)할 때 국제유가가 오른다면 인상하지 못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올해 말까지 유류세를 10% 낮춘다고 해도 연말에 국제유가가 돌연 급등하면 서민경제 안정을 위해 유류세 인하를 계속 연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유류세 인하 조치가 연장돼 세수는 계속해서 손실을 입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의 휘발유 값 대비 유류세 비중이 다른 나라에 비해 높지 않다는 점을 정부는 근거로 든다. 우리나라 휘발유 중 유류세 비중(1월 둘째 주 기준)은 62.7%로 23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15위다. 영국이 73.5%로 가장 높고 네덜란드(71.1%), 스웨덴(69.7%) 순이다.
하지만 유류세를 낮춰야 한다는 여론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는 "수출·내수 모두 흔들리는 등 경제가 비상상황이기 때문에 유류세 인하로 분위기 전환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휘발유 가격에 붙는 세금이 60%가 넘는 것은 분명 비정상"이라며 "국민소득이 OECD 회원국에 비해 낮기 때문에 시민들이 체감하는 유류세 비중은 OECD 중 높은 편"이라고 정부 주장을 반박했다. /세종=이태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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