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금수조치 해제를" "인권 개선부터" …멀고 먼 정상화

美-쿠바 역사적 정상회담… 확연한 온도차

정치민주화·관타나모 놓고 충돌… 화해 인정했지만 묵은 상처 노출

"반정부 인사 구금했나" 질문엔 카스트로 "명단 제시하라" 발끈

美의회 장악 공화, 제재 해제 반대… 단시일 내 관계 정상화 어려울 듯

21일(현지시간) 쿠바 수도인 아바나 혁명궁전에서 열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의 기자회견. 회견장에서 퇴장하기 직전 카스트로 의장은 거의 60년에 걸친 적대적 냉전시대의 종식을 다짐하는 의미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왼쪽 팔을 들어 올렸다. 오바마 대통령은 웃는 얼굴이었지만 팔은 억지로 들어 올린 듯 힘없이 구부러져 있었다.

양국이 88년 만에 역사적 정상회담을 열었지만 관계 정상화를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어색한 장면이었다. AFP통신은 이날 "오바마가 주먹을 불끈 쥔 '좌파 상징' 대신 손목을 흐느적거리는 포즈를 선택하면서 '승리의 팔'을 들어 올리려는 카스트로의 노력은 완전히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이날 오바마 대통령과 카스트로 의장은 세 시간에 걸친 정상회담을 마친 뒤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상대방을 인정하고 새로운 화해의 시대로 나아가자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스페인어로 "오늘은 양국관계에 새로운 날(nuevo dia)"이라며 "쿠바의 운명은 미국이나 다른 나라가 아니라 쿠바인들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카스트로 의장도 "양국 앞에는 여전히 길고도 복잡한 길이 놓여 있다"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새로운 관계개선의 첫발을 내디뎠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또 양국 정상은 인적 교류와 교육, 상업ㆍ무역, 인권, 보건, 과학, 농업, 기후변화, 에너지 등 분야에서 구체적인 관계 정상화 조치에 합의했다.

하지만 "오래된 상처와 불화가 다시 노출됐다"는 뉴욕타임스(NYT)의 평가대로 양국 정상은 쿠바의 정치민주화와 인권 문제, 관타나모 미국 해군기지 반환 등을 놓고 충돌했다. 카스트로 의장은 "오바마 행정부가 무역과 여행 규제를 완화한 것은 긍정적이지만 불충분하다"며 "대쿠바 금수조치와 관타나모 미 해군기지가 관계 정상화의 걸림돌로 남아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오바마 대통령은 "쿠바 정부가 민주주의와 인권을 완전히 개선하지 않는다면 양국관계가 완전히 정상화할 수 없다"며 "미국 의회가 얼마나 빨리 금수조치를 해제할지는 쿠바 정부에 달려 있다"고 반박했다. 카스트로 의장은 발끈했다. 그는 쿠바 정부가 반정부인사를 구금했다는 NBC뉴스 기자의 질문에 "정치범 명단을 제시해보라. 만약 명단을 제시한다면 오늘 밤 안으로 석방할 것"이라며 "이는 정치적 조작"이라고 반격했다.

이처럼 양국이 주요 현안을 놓고 현격한 입장차를 드러내면서 단시일 내 관계 정상화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더구나 관타나모 미 해군기지 반환이나 경제제재 조치 해제 등은 미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이 쿠바 인권 문제 등을 이유로 적극 반대하고 있다.

다만 속도는 느리겠지만 양국 간 국교 정상화는 대세가 됐다는 게 외신들의 반응이다. 이번 오바마 대통령의 방문 목적도 쿠바와의 관계 정상화를 되돌릴 수 없는 '오바마의 업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카스트로 의장도 극히 이례적으로 생방송 기자회견에 나와 관계 정상화 의지를 나타냈다.

공화당이 차기 정권을 장악하더라도 기업들의 쿠바 진출 욕구를 마냥 외면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날 최대 크루즈 선사인 카니발이 크루즈 여행 운영 승인을 받았고 전날에는 호텔체인인 스타우드호텔&리조트가 쿠바에서 호텔 3개를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뉴욕=최형욱특파원 choihu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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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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