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이신우 칼럼] AI로봇 앞에 선 국세청장

로봇이 화이트칼라 일자리 대체

그럴수록 소득세 납세자 사라져

고대로마 재산세 제도 재검토를

이신우 논설실장이신우 논설실장


인공지능(AI) 바둑 프로그램인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꺾으면서 얼마나 많은 바둑팬이 안타까운 한숨을 쉬었나. 하지만 누구보다도 더 속앓이를 했던 사람은 국세청장이었을 것이다.

웬 뜬금없는 소리냐고 묻겠지만 생각해보라. 만약 이 9단이 승리했다면 상금 100만달러(약 12억원)에 붙는 근로소득세만 해도 얼마인가. 그러잖아도 불경기가 장기화하면서 갈수록 세금 걷기가 어려워지는 판에 최대 4억원의 알짜 세금이 날아가 버렸으니 말이다.


불행히도 국세청장의 고민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AI 연구에 가속도가 붙으면서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해나가는 로봇의 영역은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 그럴수록 소득세를 낼 납세자의 숫자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조세 당국자로서 보통 심각한 상황이 아니다.

물론 알파고의 소유주인 데미스 허사비스에게 소득세를 부과하면 될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겠으나 허사비스는 AI를 그냥 회계상 ‘비용’으로 처리할 뿐이다.

더 큰 문제는 AI가 단순 노동만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로봇들이 이제는 고도의 인공지능으로 무장한 채 화이트칼라의 업무까지 손쉽게 처리할 정도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영국 국영은행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가 AI를 활용한 로보어드바이저 도입을 확대하면서 투자 상담 업무를 담당해온 550여명의 인력을 해고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지난 1월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발표한 ‘일자리의 미래’ 보고서에 따르면 로봇 및 AI 기술 발달로 향후 5년간 약 70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진다. 빅데이터 산업의 발전으로 새로 210만개의 일자리가 생긴다고 하지만 이를 고려하더라도 500만개 가까운 일자리가 없어지는 셈이다. 가장 위협받는 직업이 사무직과 행정직이라고 한다. 그야말로 알토란같은 납세자들이 사라지는 셈이다.


정부가 발표한 ‘2015년 세목별 국세수입 실적’에 따르면 소득세 징수액은 총 60조7,000억원. 이 가운데 근로소득세는 27조1,000억원으로 소득세 전체에서 약 절반을 차지함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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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세자가 시계 수리공이나 건설기계 운전자 등 단순 기술직이라면 면세점에 가까워 어차피 근로소득세 과세분이 적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고임금 계층인 은행 대출 담당자나 신용분석가·경리·회계감사 자리에 AI 로봇이 똬리를 틀게 된다면 사정은 180도 달라진다. 게다가 이들 직종의 90%가 로봇으로 대체 가능하다는 분석까지 나오는 판이다.

그래도 인간관계를 전문으로 다루는 변호사는 괜찮을 것이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머지않아 육법전서는 물론 역사상의 모든 판례를 암기하는 AI변호사까지 등장할 태세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해결책으로 로봇 보유 대수에 따라 세금을 부과해 소득세 감소분을 대체하자고 제안한다. 허나 로봇의 노동가치를 측정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로봇은 장치요 설비일 뿐이다. 그래서 다른 재정 전문가들은 로봇과 일맥상통하는 노예생산 시스템을 경제 기반으로 삼았던 고대 로마로 눈을 돌리고 있다.

로마의 주요 노동력은 노예였으며 이들은 전체 인구의 15∼25%를 점유하고 있었다. 당연히 이들의 소득은 제로라 소득세를 매길 수 없었다. 정부는 어쩔 수 없이 소득세 대신 노예 소유주들의 재산에 주목했다. 이렇게 하면 노예를 많이 소유한 지주나 상류층 가정에서 소득세를 벌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낸 것이다. 로마 정부가 노예 숫자만이 아니라 자산계급의 토지·건물·가축·사치품 등에 세금을 물린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AI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질수록 부(富)의 집중화가 극심해지리라는 우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음을 감안할 때 고대 로마는 근로소득세가 사라지는 미래사회에 좋은 참고 사례가 될 수 있다.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2014년 “인공지능이 완전히 발달한다면 인류의 종말이 올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지난해에는 “기술 발전이 불평등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며 “로봇보다 자본주의가 더 무섭다”고도 했다.

자본주의가 이렇듯 공포의 대상이 되지 않으려면 최소한의 견제장치가 필요하다. AI를 지배하는 소수에게만 집중되는 부에 대해 사회적으로 합당한 과세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로마의 재산세를 되돌아보라. shinwoo@sed.co.kr

이신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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