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與 경제공약 발표] "통화정책이 총선 공약이라니" 심기 불편한 한은

"돈맥경화 풀자는 뜻" 설명 불구 사실상 금리인하 압박

"생각지도 못한 일" 與 발권력 동원 발상에 한은 당혹

"독립성 존중을" "통화정책 필요"전문가 견해 엇갈려

새누리당이 20대 총선 공약으로 ‘한국판 양적완화’를 들고 나오자 한국은행이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역대 총선에서 거의 등장하지 않았던 통화정책이 공약에 등장했고 단순히 금리 인하 수준을 뛰어넘어 기업 구조조정, 부동산 문제 해결에 한은의 발권력을 동원하겠다는 여당의 발상에 일부 한은 관계자들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일이 벌어졌다”고 당황스러워했다. 특히 공약의 주역이 과거 재정경제부 장관,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을 지내며 통화정책에 대해 거침없이 발언해 한은과 각을 세웠던 강봉균 새누리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라는 점에서 이주열 한은 총재 입장에서는 앞으로 통화정책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29일 새누리당은 적극적인 통화정책을 주문하는 내용을 담은 ‘경제정책 공약 2호’를 발표했다. 강 공동선대위원장은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를 보면 기준금리 동결을 6개월, 7개월 가는데 여기만 매달리지 말고 미국·일본·유럽이 했던 것을 우리도 잘 보자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이들 국가는 정책금리가 제로(0)에 근접하자 중앙은행이 직접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경기부양에 나섰으며 일본과 유럽은 마이너스 금리까지 도입했다. 강 공동선대위원장이 돈이 제대로 흐르지 않는 ‘돈맥’ 현상을 풀어야 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지만 사실상 금리 인하를 압박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한은은 여당의 내로라하는 경제 브레인들이 만든 공약을 정면으로 반박할 수도 없어 불편한 표정이 역력하다. 여당이 통화정책의 독립성을 과연 이해하고 있느냐는 말도 나온다. 한은의 한 관계자는 “아이디어 차원에서 나올 수는 있겠지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라며 “과연 우리나라가 양적완화가 필요한 시점인지부터 판단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더구나 다음달 21일 금통위원 4명이 교체되면서 금통위 자체에도 미묘한 변화가 예상된다. 정부와 국책연구원 출신 일색인 위원들을 놓고 한은 안팎에서는 “왕비둘기들이 한은에 둥지를 텄다”는 말까지 나온다. 여기에 다음달 발표되는 수정 전망에서 한은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에서 2%대로 하향할 공산이 크다. 당장 금리 인하 압박이 거세질 수밖에 없다. 이달 금통위까지 이 총재가 “통화정책의 효과가 불분명하다”는 논리로 금리 동결을 지켜왔지만 4월부터는 상황이 전혀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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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이 한은에 적극적 역할을 주문한 것에 대해 경제학자들의 견해는 엇갈린다. 조장옥 한국경제학회장은 “양적완화를 한다는 얘기는 이자율을 (제로금리까지) 내리라는 것인데 한은도 명목상 독립적 기관”이라며 “기축통화국인 미국이나 일본처럼 지나치게 내렸다가는 큰일 난다”고 우려했다. 반면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금리 인하를 포함한 비전통적 통화정책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실물경기를 살리는 게 훨씬 중요하다”고 반론을 폈다. 김진일 고려대 교수는 “한국이 양적완화를 해서 금리가 과도하게 떨어지면 은행만 망가지는 게 아니라 외채까지 망가진다. 이런 위험을 감안하고 양적완화를 할 때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새누리당은 이날 한은의 발권력을 동원해 적극적인 구조조정에 나서자는 공약도 내놓았다. 산업은행에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 필요한 신규자금을 공급하기 위해 한은이 산은이 발행한 산업금융채권을 인수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은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산금채는 중앙은행이 보유하기에는 신용 리스크가 높아 정부보증이 필요하다. 한은이 주택담보증권(MBS)을 직접 인수해 가계의 주택담보대출을 20년 장기분할상환제로 전환시키는 공약도 마찬가지다. MBS도 시중은행에 담보증권으로 1년간 인정할 뿐 직접 인수하려면 정부보증을 거쳐야 가능하다.

과거 경험은 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한은은 부실채권정리기금 조성을 위해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 유동성을 지원했다. 하지만 당시는 국가적 위기였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새누리당이 조동철·신인석 등 여권 지향적인 금통위원을 통해 한은을 압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연선·임세원기자 bluedash@sed.co.kr





이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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