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소장품을 ‘새로운 과거’로 재탄생시켜 감동과 즐거움을 드리는 창조적 공간이 바로 박물관입니다.”
신임 이영훈(사진·60) 국립중앙박물관장이 31일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 같은 말로 박물관의 본질을 강조했다. 지난 9일 청와대의 예고없는 발탁에 이어 14일자로 취임한 이 관장은 서울대 고고학과와 동 대학원 고고미술사학과 출신으로,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사와 학예연구실장을 거쳐 최근까지는 국립경주박물관장을 지낸 전형적인 ‘박물관맨’이다. 내부 승진으로 차관급 관장에까지 오른 그는 “마치 본가나 친정으로 다시 돌아온 느낌”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 관장은 “박물관 직원 모두가 전문인력이 되게끔 내부역량을 강화하고 그간의 폐쇄성을 깨고 개방과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히며 특히 “전시실처럼 수장고도 열어젖히겠다는 각오로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등 관계기관과 협력하겠다”고 강조했다.
미술사를 전공한 전임 김영나 관장이 박물관의 외연을 넓힌 동시에 전시실 디자인 등을 개선해 전시여건이 향상됐다면, 고고학 전공자인 이 관장은 수장고 관리와 유물 연구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그는 “경주박물관장 재직 시 ‘황남대총전’ ‘천마총전’ 등을 열면서 경험해 보니 수장고 유물을 발굴 당시의 맥락을 살려 전시하니 국민 만족도가 높았다”며 “필요에 따라 객원연구원 제도도 도입하고, 박물관 수장고도 보안과 관리능력, 환경이 많이 좋아진 만큼 자신감 있게 일반에게 개방하는 행사도 생각해 볼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 관장은 김 전 관장이 국립박물관과 전시 콘셉트가 맞지 않다고 판단해 무산됐던 것으로 알려진 ‘프랑스 장식미술전’을 “전시 내용을 다듬어 내년 상반기에 개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장은 “2014년 1월에 프랑스 박물관연합 쪽 조직위원장이 한불수교 130주년 전시로 우리 박물관에 제안했고 이후 3월에 (김 전 관장이) 파리 장식미술관을 방문한 이후 전시 가닥을 잡고 추진해 온 것으로 안다”며 “콜베르재단이 처음부터 관여한 것은 아닌데 프랑스 장식미술의 역사를 보여주려다 보니 현대장식품에 해당하는 명품이 들어가게 됐다”고 설명했다. 콜베르재단은 프랑스 명품 브랜드 연합체 격인 조직으로 카르티에, 루이뷔통 등 53개 업체가 속해 있다. 김 전 관장은 콜베르재단이 박물관을 상업적 목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을 반대하는 입장이었고, 일각에서는 이 점 때문에 김 전 관장이 청와대로부터 ‘경질’ 당한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신임 이 관장은 “프랑스의 박물관 연합은 법인이고 우리 박물관은 국가기관이라 그쪽은 재정마련이 중요하고 우리는 국가 예산으로 운영되는 만큼 서로의 문화풍토나 인식을 고려해야 한다”면서 “어떤 전시가 관람객에게 가장 유리한가를 따져야지 상업적인 것은 전혀 안된다는 입장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덧붙여 이 관장은 일제시대 도난당한 줄로 알았던 국보 제59호 지광국사 현묘탑비와 함께 있던 기단부 사자상이 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돼 오다 2010년 보존처리까지 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것을 두고 “지정 문화재의 존재를 확인하고 세척 등 현상변경을 했음에도 관할 기관인 문화재청에 통보하지 않은 것은 잘못한 일”이라며 사과했다. 이 관장은 그간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지광국사탑을 연구했고 오는 6일 전면 해체해 보존처리를 시작하는 만큼 “유물(사자상)의 관리기관은 문화재연구소로 바꾸는 게 합리적일 것 같아 문화재청에 변경을 요청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