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북 GPS교란'에 발가벗겨진 대한민국

전력·금융망 등 필수 적용 불구

원천 차단책 없이 사후 대응만

◇북한의 GPS도발 일지

▲2010년 8월 서해안 일부지역 GPS수신 장애 발생
(민항기 15대, 군함 1척, 181개 통신기지국 수신장애)
▲2011년 3월 수도권 서북부 GPS 신호 교란
(경비정 척 레이더서 사라짐, 미군 정찰기 오작동)
▲2012년 4~5월 서울, 김포, 고양 등 수도권 일대 15일간 GPS교란
(항공기 1,016대, 선박 317척 등 수신장애)
▲2016년 3~4월 3월말부터 이틀 연속 재밍 시도
(항공기 58대, 선박 52대가 재밍 영향 받음)
“위성항법장치(GPS)는 국가의 전력망, 금융 네트워크, 이동통신망 같은 기간망에 필수적으로 적용되지만 우리나라는 북한의 GPS 재밍(jamming·교란)을 원천 차단할 수 있는 수단이 별로 없어 GPS 테러 앞에 발가벗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동통신 업계 고위관계자)


북한이 3월31일부터 이틀에 걸쳐 대한민국을 겨냥한 GPS 교란을 감행하면서 정부가 비상대응에 나섰지만 예방수단이 크게 미흡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정부의 현행 대응체계가 주로 재밍 공격 발생시 ‘경고’를 발령하거나 피해를 수습하는 사후적 대응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민간 부문에서는 GPS 교란을 막을 장비가 거의 없어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고 전파 및 항법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국방 및 안보 분야에서도 주요 국산무기 장비의 상당수가 보안에 취약한 민간용 GPS를 채용하고 있어 북한이 전자전을 걸어올 경우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군사전문가들의 지적도 제기됐다.

북한의 도발 원점을 직접 군사적으로 타격하기 어려운 안보환경에서 이를 원천적으로 막을 대안은 항재밍(anti-jamming)이다. GPS 교란은 정상적인 GPS 신호보다 훨씬 높은 출력의 전파로 혼선신호를 보내는 방식인데 항재밍은 이 혼선신호를 파내고 정상신호만 남기는 이른바 ‘널링(nulling)’ 기술로 실현할 수 있다. 문제는 이 항재밍 설비가 핵심 국가 기간시설 같은 극히 일부의 인프라에만 설치돼 있다는 점이다. 이는 설치비용 등에 대한 부담 탓이기도 하나 민간기업이나 기관들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GPS 교란에 대응하는 보안의식이 낮다는 점도 원인으로 작용한다. 금융권의 한 전산보안담당 간부는 “신용카드나 고객 포인트 같은 기존의 전통적인 금융 서비스는 스마트폰을 매개로 하는 모바일금융으로 대체되고 있는데 그 기반이 되는 것이 위치기반 서비스”라며 “GPS 교란이 대규모로 진행되면 이런 모바일금융에 영향을 미칠 염려가 잠재돼 있지만 솔직히 구체적으로 이런 문제가 업계에서 논의되지는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GPS와 직접 연관된 자동차 업계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무인자동차 시대가 열릴 경우 GPS는 그 기반이 될 터인데 아직 국내 자동차 업계 내에서 GPS 테러 차단 방안이 심도 있게 다뤄지지는 않는다는 게 관련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그나마 현실적 차선책으로 꼽히는 방법은 GPS 이외의 다른 항법시스템을 병행해 사용하는 것이다. 위치기반기술을 이용한 국내 각종 전자기기들이 미국이 주도하는 GPS뿐 아니라 러시아의 글로나스, 유럽의 갈릴레오, 중국의 베이더우 등의 신호도 함께 수신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다. 위성항법시스템이 끊김 없이 정확한 위치정보를 제공하려면 일반적으로 20~30개 정도의 인공위성을 확보해야 하는데 글로나스 시스템은 이미 29기의 위성을 배치한 상태다. 베이더우는 현재 18개, 갈릴레오는 현재 8개 정도의 위성만 갖고 있어 다소 미흡하지만 중국과 유럽은 오는 2020년까지 해당 항법시스템용 위성을 각각 35개, 30개까지 확충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미 최신 스마트폰 등 일부 기기에는 이처럼 복수의 위성항법시스템 정보를 수신할 수 있는 칩이 내장돼 있어 GPS 교란 시에도 어느 정도 자동 대응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 역시 근본적인 대책은 될 수 없다. 신천식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위성항법·레이더연구실장은 “교란전파 출력을 높이면 글로나스·베이더우·갈릴레오도 얼마든지 재밍될 수 있다”며 “그동안 재밍이 주로 GPS 방식에 집중돼와서 상대적으로 다른 위성항법시스템과 병행하는 데 안전하다는 뜻일 뿐이지 이 방법으로 전파교란을 완전히 피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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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이 아닌 지상기지국이나 무인기 등을 통한 항법정보를 제공하는 방식도 제한적이지만 대응수단으로 부각되고 있다. 대표적인 시스템으로는 e로란이 있는데 이 역시 한계가 명확하다. 서비스 범위가 불과 수십㎞에 불과하고 위치정보 정밀도는 인공위성을 통한 항법시스템보다 낮아 보조적인 수단으로밖에 쓸 수 없다는 게 국토교통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다행히 GPS 교란에 대한 국가 차원의 사후적 대응체계는 단기간에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북한이 지난 2010년 8월과 2011년 3월, 2012년 4~5월에 각각 GPS 재밍을 시도하자 정부는 부랴부랴 GPS 교란을 즉시 탐지할 수 있는 감시시스템을 2012년부터 구축해 현재는 완비한 상태다. 또한 미래창조과학부·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등이 유기적으로 연계된 ‘GPS 전파 혼신 위기대응체계’도 완비해 징후 감시에서부터 사후 대응까지 발 빠른 대응이 가능해졌다. 다만 북한의 도발방법도 그만큼 발전하고 있어 이에 발맞춘 대응체계 강화가 필요해보인다. 군의 한 관계자는 “북한은 10여종의 다양한 GPS 교란장비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번 GPS 교란은 과거와 유사한 수준이지만 교란범위가 다소 확대된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국가적 차원의 도발이 아닌 개인의 국지적 GPS 테러 가능성도 있는데 현 정부 대응체계는 이에 대해 무방비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실제로 해외 주요 인터넷 쇼핑 사이트에 들어가면 불과 200달러 안팎의 저렴한 가격으로도 반경 수십m 범위의 GPS 수신을 마비시키는 재머를 쉽게 살 수 있어 이의 국내 반입을 적극 제약하고 모니터링할 수 있는 체계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권홍우·민병권기자 hongw@sedaily.com

◇GPS교란에 대한 대응 수단 특징과 한계

▲항재밍
-혼선신호를 없애는 방식으로 선제적 대응가능
-비용 등 문제로 민간 등에 광범위한 설치 어려워
▲복수 위성항법체계 혼용
-글로나스, 바이더우, 등의 위치정보 병행수신 가능
-다른 위성항법체계도 GPS처럼 교란 당할 우려
▲지상항법체계 이용
-e로란 등 무인기, 지상기지국 활용해 교란 회피
-서비스 범위가 수십km에 불과하고 정밀도는 낮음
▲사후대응체계 구축
-교란 탐지용 감시시스템 구축, 재난안전본부 등과 유기적 대응
-저가 재밍장비 반입한 개인의 국지적 GPS 테러엔 취약


민병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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