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야드 남짓한 리디아 고(18·뉴질랜드동포)의 드라이버 샷은 에리야 쭈타누깐(21·태국)의 3번 우드 샷보다도 짧았다. 일반 대회보다 길게 세팅된 메이저대회 코스임에도 괴력의 장타자 쭈타누깐은 숫제 드라이버를 빼놓고 출전했다. 522야드짜리 파5홀(11번홀)에서 3번 우드 샷 두 번으로 2온 2퍼트 버디를 잡기도 했다.
4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랜초미라지의 미션힐스CC 다이나쇼 코스(파72·6,769야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최초의 태국 국적 우승자가 탄생하는 듯했다. 쭈타누깐은 리디아 고에 세 홀 남기고 2타 차로 앞서 있었다. 더욱이 마지막 18번홀(파5)은 웬만한 장타자라면 2온이 가능한 홀. 이래저래 쭈타누깐에게 유리해 보였다.
하지만 ANA 인스퍼레이션(옛 나비스코 챔피언십) 대회 우승자들의 전통인 18번홀 연못 ‘포피스 폰드’에 뛰어든 선수는 쭈타누깐이 아닌 리디아 고였다. 리디아 고는 12언더파, 쭈타누깐은 10언더파로 마쳤다. 시즌 2승이자 LPGA 투어 통산 12승으로 우승상금은 39만달러(약 4억4,000만원). 지난주 KIA 클래식에 이어 연속 우승에 성공한 리디아 고는 2주간 상금으로만 64만5,000달러(약 7억4,000만원)를 벌어들였다.
세계랭킹 1위 리디아 고는 이로써 여자골프 메이저대회 최연소 2승 기록을 썼다. 지난해 9월 시즌 마지막 메이저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최연소 메이저 우승 기록을 작성한 데 이어 올 첫 메이저인 ANA 대회마저 제패, 또 하나의 최연소 기록을 추가한 것이다. 리디아 고는 18세11개월이며 종전 기록은 1998년 20세9개월의 박세리(39·하나금융그룹)가 세웠다. 18세11개월은 남녀 통틀어서는 두 번째 기록이다. 톰 모리스 주니어(스코틀랜드)가 1869년 18세4개월에 메이저 2승을 달성했다. 147년 전 일이니 현대골프에서는 리디아 고의 기록을 최연소로 봐도 무방하다.
2타 차 단독 선두였던 쭈타누깐은 마지막 세 홀에서 모두 보기를 범했다. 갑자기 티샷이 흔들리고 퍼트도 불안해졌다. 4라운드 16번홀(파4) 3퍼트가 쭈타누깐의 이번 대회 첫 3퍼트였다. 리디아 고에게는 경쟁자의 자멸이라는 행운이 찾아온 셈이었다. 그에 앞서 마지막 순간까지 흔들리지 않은 리디아 고의 ‘철옹성 멘털’이 행운에 주춧돌을 놓았다.
쭈타누깐, 전인지(22·하이트진로)와 함께 1타 차 공동 2위로 출발한 리디아 고는 퍼트 수 27개의 짠물 퍼트로 보기 없이 버디만 3개를 잡았다. 파도 어려운 상황에서 10m가 넘는 1퍼트 버디로 마무리한 8번홀(파3) 등 결정적인 한 방이 고비마다 위기를 기회로 바꿔놓았다. 버디 못지않은 파 세이브가 우승의 밑거름이었다. 11번홀(파5)에서 티샷부터 세 번째 샷까지 크고 작은 실수가 이어졌지만 3.5m 파 퍼트에 성공했고 13번홀(파4)에서는 두 번째 샷이 길어 그린을 넘기고도 역시 3m 남짓한 파 퍼트를 놓치지 않았다. 리디아 고는 “11·13·17번홀(파3) 파 퍼트가 결정적이었다. 이 홀들에서 파를 지켜 추격을 계속할 수 있었다”며 “특히 17번홀에서 보기를 했다면 18번홀 버디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 홀에서 리디아 고는 3온 전략을 펼쳤고 88야드 거리의 세 번째 샷을 핀 50㎝에 붙여 버디로 마무리했다.
뒤 조의 쭈타누깐은 이 홀에서 티샷을 왼쪽으로 보낸 끝에 보기를 적어 10언더파 단독 4위로 밀렸다. 한때 3타 차 리드를 지키기도 했지만 막판 극심한 난조에 또다시 땅을 친 것이다. 쭈타누깐은 3년 전 LPGA 투어 혼다 타일랜드에서도 한 홀 남기고 2타 차 선두를 달리다 마지막 홀에서 트리플 보기를 저질러 박인비(28·KB금융그룹)에게 우승을 내줬다.
한편 허리 부상 뒤 한 달 만에 복귀한 전인지는 찰리 헐(잉글랜드)과 함께 11언더파 공동 2위에 올랐고 세계 2위 박인비와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소속 박성현(23·넵스)은 8언더파 공동 6위로 마쳤다. 3라운드 단독 선두 렉시 톰슨(미국)은 1타를 잃어 9언더파 5위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