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부터 겨울이면 덕유산 눈꽃 산행에 나서는 재미에 빠져 있다. 해발 1,614m의 향적봉에서 중봉에 이르는 드넓은 구상나무 군락지에 피어 있는 상고대를 보노라면 가슴속까지 시원하게 뚫리는 기분이다. 한겨울에도 진초록 잎새를 뽐내는 구상나무 가지 사이로 피어 있는 화려한 눈꽃은 그야말로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내게 마련이다.
구상나무는 한반도 고산지대에만 자생하는 특산종으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상록수이자 침엽수다. 학명도 ‘아비에스 코리아나(abies koreana)’라고 붙여져 떳떳한 한국 고유종임을 자랑하고 있다. 해발 500m부터 볼 수 있지만 주로 군락을 이루는 곳은 해발 1,650~1,680m의 한라산 백록샘 같은 정상 부근이다. 구상나무는 수형이 아름다워 해외에서도 크리스마스 장식용으로 많이 사용되며 조경용으로도 인기다. 서울 서초동에 예술의 전당을 건립할 당시에도 구상나무를 심으려다 나무 값이 비싸 결국 포기했다는 얘기도 전해질 정도다.
구상나무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07년 제주도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프랑스인 포리 신부 덕택이었다. 신부로부터 표본을 건네받은 하버드대의 어니스트 H 윌슨은 한라산에서 직접 구상나무를 채집해 학계에 처음으로 소개했다고 한다. 제주 사람들은 구상나무의 잎이 성게 가시 모양처럼 생겼다며 사투리로 성게를 가르키는 ‘쿠살’과 나무인 ‘낭’을 합해 ‘쿠살낭’이라고 불렀는데 구상나무라는 이름도 여기서 유래했다고 한다.
구상나무가 한라산에 이어 덕유산·지리산 등 내륙에서도 집단 고사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덕유산만 해도 10그루 가운데 1그루꼴로 말라죽고 있다는 것이다. 기후변화에 따른 겨울 가뭄 탓이 크다지만 명확한 이유는 아직 규명되지 않고 있다. 구상나무는 신생대 4기의 기후변화를 거치며 고산 지역에만 남았는데 마침내 멸종될 위기에 몰린 셈이다. 우리 국토에서 의연히 버티며 풍파를 견뎌낸 구상나무가 한국의 대표 수종으로 꿋꿋하게 살아남기를 기대한다. /정상범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