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참다운 기도





매일 아침 기도 메일을 보내오는 사람이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지식인이다. 그의 기도는 그 전날 자신의 힘든 일을 신에게 털어놓고 죄과를 반성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주변의 이웃을 돌아보며 그들에게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고, 더 많은 것을 베풀기를 다짐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의 깊은 기도가 위로가 되었던 적이 있다. 그 어떤 자기계발서보다도 통찰력 있고 따뜻한 메시지가 신자(信者)가 아닌 내 입장에서도 어느 정도 공감할 만 했다는 뜻일 게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그의 기도 메일을 받기가 거북스러워졌다. 자신의 지나온 시간들을 반성하기보다는, 스스로의 입장을 변명하는 데 급급해 보였기 때문이다. 얼마 전부터 그는 누군가에게 음해를 당하고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이 어떤 사람의 전략적 의도에서 출발한 ‘헐뜯음’ 같다고 말했다. 사실 그 일은 여러 사람들이 기관 내에서 논쟁 중에 있는 사안이었다. 기도 메일의 글쓴이가 가해자이고, 또 다른 피해자가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나는 여기서 느꼈다. 똑 같은 기도와 참회라 할지라도, 때로는 자신의 입장을 강변하고 부당하게 스스로를 포장하는 무기가 될 수도 있다고.


‘책 한 권 잘못 읽은 사람이 나라를 망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설프게 배우고 무엇인가를 익힌 사람이 얄팍한 지혜를 모든 상황에 이용하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아마 기도를 사랑하는 이 글 속 인물에 대한 비평이 될 수도 있겠다. 그는 자신의 행각으로 인해 다른 사람도 기도를 필요로 하는 입장이 될 수 있음을 알고나 있을까. 참다운 반성과 고뇌는 스스로의 추악한 면을 인정할 줄 아는 데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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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들어 아침마다 진실한 기도를 올린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유독 많아졌다. 아마 선거철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이 믿는 종교는 다양하지만 소원은 하나같다. 300명 중 하나가 되는 것, 그리고 영향력 있는 오피니언 리더가 되는 일이다. 재미있게도 이들은 좀 전에 언급한 기도의 주인공과 비슷한 태도를 갖고 있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네거티브를 하면, 그것을 얼른 모면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상대방보다 뒤쳐진다 싶으면 얼른 추격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스스로의 과오에 대한 반성과 고뇌는 별로 엿보이지 않는다. 차라리 얼마 전 본의 아니게 선거에 나갈 수 없게 된 사람이 올린 산사(山寺)로 떠난 방랑 이야기가 좀 더 진실돼 보였다.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기도는 ‘평소 인지하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을 내면에 투영하는 시간’이라고 이야기했다. 완전히 껍질이 제거된, 스스로를 만나는 순간 말이다. 가식적인 사람들의 소원과 기도가 넘쳐나는 사회는 정말이지 희망이 없다. 이제 우리는 참다운 기도와 자기 변명을 구분할 때가 됐다.

김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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