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THE BIG THINK] 기업의 의사결정 속도를 높여라

진정으로 창조적 파괴 시대에 살고 있다면, 왜 기업들의 의사결정은 느려지고 있는 것일까?



현재 기업의 모습을 비즈니스 용어로만 판단한다면, 당신은 우리가 초고속 변화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실리콘밸리 거물 사업가들이 ’빠른 실패‘에 대해 미친 듯이 이야기하고, ‘민첩성’과 ‘가속도’ 같은 단어들이 대충만 봐도 수십 권의 유명 비즈니스 서적 제목을 장식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기업의 실제 업무처리 방식을 자세히 살펴보면, ‘속도’와 ‘민첩성’은 전혀 떠올릴 수 없는 단어처럼 보인다.

필자는 출장을 다니면서 세계에서 가장 큰 기업의 경영진 수백 명과 이야기를 나눠봤다. 이들에겐 공통적인 불만 사항이 하나 있다: “업무를 끝내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관료주의에서 오는 그런 좌절감의 기원은 아마도 메디치 가문 Medicis까지 거슬러 올라 갈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컨설팅 기업 CEB에서 ‘명백하고 골치 아픈 현실’을 보여주는 방대한 자료를 찾아냈다. 대부분의 기업 활동이 빨라지지 않고 오히려 늦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 부문 전반에 걸쳐 주요 절차의 속도를 비교하면서, 우리는 가장 기초적인 수준의 의사결정 조차도 지난 5~10년간 느려지고 있다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 연구의 일부 사례들은 이런 추세를 보여준다.


예컨대 지난해 기업 인사담당자 4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신규 직원 채용 기간이 2010년 42일에서 최근 63일로 증가했다. 한 건의 IT 프로젝트를 완수하는데 소요되는 평균 시간도 2010년에서 2015년 사이에 한달 이상 늘어났다. 지금은 프로젝트 시작부터 완수까지 10개월 정도 걸린다. 이 특정 자료는 60개 글로벌 기업의 프로젝트 매니저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에서 나왔다.

기업들이 의사결정 절차를 더 촘촘하게 짜고자 한다면,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B2B 판매 부문에 종사하는 수 천명의 직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다수의 조사에 따르면, ‘고착화된 지연’에 대한 일부 놀랄만한 증거들이 나타났다. 예컨대 한 회사가 다른 회사에 뭔가를 판매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이 지난 5년 동안 22% 상승했다. 동의를 받으면 되는 한 두 명의 바이어 수가 이제는 다섯 명 이상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런 의사결정 지연이 기업 존폐에 커다란 위협이 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경직된 의사 결정구조를 가진 기업들은 더욱 기민한 경쟁사들로부터 심각한 위협을 받게 된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초고속 의사 결정을 하는 회사들-페이스북 Facebook, 아마존 Amazon 그리고 구글 Google처럼 잘 알려진 기업들이다-이 많은 영역에서 그런 열광적인 창조적 파괴를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생존이 크게 위협받지 않는 기업일지라도, 이 모든 관료주의와 결정력 부족의 비용은 여전히 클 수밖에 없다. 예컨대 한신입직 자리가 예정된 날을 남겨 공석으로 남게 되면, 기업은 하루에 400달러 이상의 비용을 낭비하는 것으로 연구 결과 드러났다. 또 일반적이거나 복잡한 IT 프로젝트가 평균 한달 지연되면 4만 3,000달러의 비용이 발생한다. 가장 복잡한 IT 프로젝트들의 경우, 그 비용은 몇 배나 더 커질 수 있다.

속도에 대한 집착, 지연에 따른 비용, 경영자들의 좌절감을 고려하면, 왜 기업들은 이렇게 느려지는 것일까?

분명한 이유부터 따져보자. 바로 회사 규모가 더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할 때, 포춘 500대 기업 500위에 오른 기업만 해도 매출이 1990년에 비해 거의 5배나 증가했다.

그 밖에 덜 분명한 이유로는 너무 자주 형편없이 운영되는 ‘통제 및 위험 관리’ 기능의 확대를 들 수 있다. 기업 조달담당 직원수가 늘면서 규율 준수와 프라이버시, 데이터 보호 등의 분야에서 새로운 업무가 증가하고 있다(CEB 조사에 따르면 이런 업무는 경기 침체 이후 두 배 이상 늘어났다). 우리는 최근 다른 연구를 통해 기업의 위험관리 실태를 조사했고, 지난 10년간 또 다른 기업 위험관리(ERM) 기능의 규모가 9배나 증가했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변화’가 기업의 슬로건으로 부상한 것도-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기업 속도에 제동을 거는 데 기여했다. 예컨대 시골의 오래된 상점 주인이 ‘낚시’를 하기 위해 가게 문을 잠깐 닫으면, 새로운 상점은 거의 마비 상태에 빠진다. (늘어나는 손님에 응대할) ‘변화’를 시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모호한 회계 규정도 이런 현상을 부추기는데 일조를 한다. 회계규정상 기업들이 구체적인 변화를 우선 순위대로 처리하는 것보다, 장기간 대규모 개선 노력을 할 때 더 많은 비용 절감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기술(혹은 기술의 오용)에게도 책임이 있을 수 있다. 이메일 참조 (* 역주: 일명 CC라고 불리며 Carbon Copy의 약자다)에 10명 이상의 수신인을 가져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협업의 편리함이 갖는 단점을 잘 알 것이다. 협업 도구의 증가로-(경기 침체 동안 무능한 경영진 속에서 살아남은 잔재인) 직속 상관보다는 동료들에게 더욱 의존하는 추세와 함께-직원들의 60%가 하루에 최소 10명의 동료들과 업무 상의를 하는 작업 환경이 생겨났다.

관련기사



2만 3,000 명 이상의 직원들을 조사한 CEB 결과에 따르면, 놀랍게도 그 60% 가운데 절반은 업무추진을 위해 20명 이상을 접촉해야 했다.

그렇다면 속도를 내는 올바른 방법은 무엇인가? 경영진이 협업을 거부하고 더욱 독단적으로 결정을 해야 한다는 게 정답은 아니다. 꼭 협업과 위험 관리가 속도를 저해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예를 들어, 신규 인재 영입에 관해 미국 서부지역의 병원 체인 프로비던스 헬스 앤드 서비스 Providence Health & Services 매니저들은 잠재적 후보자들에 대한 단서와 추가 피드백을 사내의 많은 직원들로부터 얻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프로비던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용 절차를 매우 간단한 방법으로 효율화했다. 직접 인터뷰를 하는 사람들을 신입 직원 후보들과 면밀하게 일할 관리자들로 제한한 것이다. 병원은 이런 방식으로 채용 결정에 필요한 인력 수를 40% 줄였고, 좋은 인재들을 영입하면서도 채용 속도를 상당히 올릴 수 있었다.

다른 사례에서 볼 때, 조직의 속도 향상은 기업 문화의 전반적인 변화를 필요로 한다. 우리의 경험상, 이런 변화는 종종 기업의 IT 부서를 초고속으로 개선할 때 필요하다(비IT 동료들과 커뮤니케이션 개선에도 필요하다). 일례로,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선두 기업 레드햇 Red Hat은 다양한 방식을 통해 사내 절차를 빠르게 했다.

첫째, IT팀이 프로젝트를 논의할 때 어려운 전문 용어보단 쉬운 단어를 사용하도록 했다. 둘째, 팀간 프로젝트 ‘분업’을 계획했다. 후자의 경우, 회사가 누가 누구와 협업하는지를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 명확히 파악할 수 있다. 팀원들이 프로젝트를 지연시키는 가장 흔한 원인을 집중적으로 찾아내는 데에도 도움이 됐다 (프로비던스 헬스 앤드 서비스와 래드햇은 CEB 리더십 카운슬프로그램에 참가했다).

오늘날 속도 저하의 핵심 원인들-기업 규모가 더 커지고, 위험 관리가 더 큰 관심을 받는 것-이 그 자체로 나쁜 것이라고 말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경영진은 기술과 조직 발전이 초래한 다양한 애로사항을 고려하고 상쇄하기 위해 조직과 절차를 잘 만들 필요가 있다. 가장 크고 가장 오랜 전통을 가진 기업들도 협업과 효율화의 균형을 이룰 수 있다.

톰 모너핸은 CEB 회장 겸 최고경영자다. CEB는 버지니아 알링턴에 본사를 둔 경영 컨설팅 기업이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팀/By Tom Monahan

안재후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