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마른 하늘에 거래정지… 시카고 범람



마른 하늘에 날벼락, 아니 홍수가 날 수 있을까. 1992년 4월 13일의 시카고가 그랬다. 미국 중북부의 중심인 이 도시에 갑작스런 비상이 걸렸다. 시카고강의 범람 탓이다. 맑은 하늘에서는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았지만 마천루가 즐비한 도심지역(Chicago Loop)의 빌딩 지하에 물이 차올랐다.

물난리가 시작된 곳은 옛날 지하도. 19세기 시카고 강 밑을 파고 레일을 깔아 1956년까지 석탄과 화물을 실어 날랐던 터널에서 발생한 균열이 범람의 시작이었다. 마침 오래된 교량의 안전을 위해 파일을 박는 공사가 진행되던 상황. 시카고 강물은 강 바닥 밑의 관으로 밀어 들어가 지하수로와 터널을 타고 도시 곳곳으로 번졌다. 가장 먼저 금융회사들이 밀집한 동쪽 도심 고층건물들의 지하에 물이 차올랐다.


말이 범람이지 실제로 넘친 수량은 크지 않았다. 나이아가라 폭포가 1분간 떨어뜨리는 폭포수의 57% 수준이었으나 며칠간 범람의 합계여서 피부로 강의 범람을 느끼는 시민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보이지 않는 수해가 가져온 피해액은 약 19억 5,000만 달러. 긴급복구반이 투입된 끝에 도시의 하수도망은 나흘 만에 기능을 회복했으나 일부 빌딩은 수주일 동안 작동하지 않는 후유증을 앓았다.

옛 구조물에 의한 피해를 맛본 시카고는 자연 환경을 이용하는 대비책으로 위기에 맞서 나가고 있다. 지하수가 넘칠 경우에 지형이 낮은 곳으로 물길을 돌릴 수 있는 예비 수로와 터널을 마련해 언제 어느 곳에서 사고가 나더라도 위험을 분산시킬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요즘에도 시카고 시는 주변 수계 관리와 시설물의 유지 보수를 위해 해마다 수억 달러의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

시민들은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시카고 강물의 범람이 의미를 갖는 이유는 주식 선물시장과 현물 시장이 분명한 연동관계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 여지없기 드러났기 때문. 시카고 도심의 아랫도리를 적신 강물로 대형 빌딩 밀집 지역에 대한 전기와 가스 공급이 끊겨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와 시카고상업거래소(CME) 역시 기능을 잃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실물 상품거래소과 선물 시장이 매매 정지 상태에 들어간 시각은 이날 오전 11시 45분. 시카고 선물시장의 S&P 500 선물의 6월물 그래프는 그 시각 이후 마치 사망 선고를 받은 환자의 심장처럼 일자를 그렸다.(사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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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변수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다른 시장에도 영향을 끼친 것.

무엇보다 시카고에서 비행기로 네 시간 거리인 뉴욕 증시의 현물 거래가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시카고의 정전과 매매중단 직전까지 3240~3265선을 오가던 다우지수가 정오를 넘기면서부터는 3260선에 들러붙어 소폭으로 진동했을 뿐이다. 마치 뇌사 상태에 빠져든 환자의 뇌파 그래프처럼 움직였던 것. 거래량은 전일보다 25% 줄어들었다.

시카고의 범람을 통해 선물시장과 현물시장이 샴쌍둥이처럼 불가분의 관계라는 점이 다시금 입증된 셈인데,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딜러들이 각양 각색의 반응을 보였다는 점이다. 나이 많은 딜러들은 “주식시장이 마침내 옛날처럼 정상적으로 차분하게 움직인다. 프로그램 트레이더들이 나타나기 이전 월스트리트의 평온한 나날들을 떠올리게 해준다”라고 회상에 젖었다.

재빠른 딜러들은 즉각 시카고 선물시장과 뉴욕 현물 시장간 상관관계에 분석에 들어갔다. 시카고 범람에서 확인된 시장 선행지표로서 선물시장 움직임을 제대로 공부하면 막대한 물량이 거래되는 프로그램 트레이딩과 더블 위칭데이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는 대표적인 투자자는 공격적이지만 장기투자로 유명한 제레미 시겔. 대형주의 움직임은 선물시장에서 먼저 반응을 보인 사건들에 의해 움직인다는 게 제레미 시겔의 투자 원칙이다. 사고만 보지 말고 주가를 읽으라는 얘기다.

/권홍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hongw@sedaily.com

권홍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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