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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준 이대호

10회말 대타 출전 끝내기 투런포

한국인 빅리거 첫…팀 5연패 탈출

이대호가 14일(한국시간) 메이저리그 2호 홈런을 연장 대타 끝내기 투런포로 때려낸 뒤 환호하며 홈으로 들어가고 있다. /시애틀=AFP연합뉴스이대호가 14일(한국시간) 메이저리그 2호 홈런을 연장 대타 끝내기 투런포로 때려낸 뒤 환호하며 홈으로 들어가고 있다. /시애틀=AFP연합뉴스




2주 전만 해도 현지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마이너리그 초청선수였다. 그랬던 이대호(34·시애틀 매리너스)는 이제 시애틀의 보물로 불리고 있다.


이대호는 14일(한국시간) 시애틀에 홈 첫 승을 안긴 텍사스 레인저스전 홈런으로 구단 역사를 새로 썼다. 대타 끝내기 홈런을 친 시애틀 선수는 이대호가 역대 세 번째인데 데뷔 시즌에 기록하기는 1977년 구단 창단 후 처음이다.

재미있는 기록도 있다. 만 33세인 이대호는 1950년 만 35세였던 루크 이스터(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이후 메이저리그 최고령 신인 끝내기 홈런 기록을 썼다.

이대호는 한국 KBO리그(롯데 자이언츠)에서 11년간 225홈런, 일본에서 2012년부터 4년간 98홈런을 때린 베테랑이다. 대타 끝내기 홈런은 없었다. 신인 시절을 제외하면 대타 자체가 낯선 임무였다.


이대호는 돈과 입지가 보장된 일본 무대를 떠나 모험을 걸었다. 나이가 많고 발이 느리며 수비에 의문이 따른다는 이유로 미국에서는 환영받지 못했다. 대부분 선수들이 지난해 12월 계약을 마무리한 반면 이대호는 지난 2월에야 1년짜리 계약서를 썼다. 스프링캠프에서 합격점을 받으면 쓰고 그렇지 못하면 자유계약선수(FA)로 풀어줄 수 있다는 내용의, 메이저리그 40인 로스터 보장도 없는 초라한 계약서였다. 홈런으로 국내를 평정하고 일본시리즈 최우수선수(MVP)까지 했으면서 헐값에 자존심을 팔았다는 반응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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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호는 그러나 시범경기에서 타율 0.264(53타수 14안타) 1홈런 7타점을 기록하며 빅리그 백업 1루수 자리를 따냈다. 기록보다 성실성으로 눈도장을 받았다. 새벽잠을 포기하고 개인훈련을 했고 휴식을 반납하며 그라운드를 뒹굴었다. 수비능력이 미지수라는 인식을 지우기 위해서였다. 타격훈련 뒤에는 신인으로 돌아간 듯 외야로 나가 공을 주워담았다. 그 결과 시애틀 구단은 “덩치가 매우 큰 선수임에도 수비와 주루 등에서 놀라운 열의를 보여줬다”며 개막 25인 로스터에 이대호의 이름을 넣었다. 스콧 서비스 시애틀 감독은 “자신을 내세우기보다 팀에 맞춰가려고 노력하는 부분이 매우 인상적인 선수”라고 이대호를 평가했다.

개막 로스터 진입으로 연봉 100만달러(약 11억5,000만원)를 보장받은 이대호는 연봉을 네 배로 불릴 수도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꾸준히 활약하면 최대 400만달러(약 46억원)까지 받을 수 있다는 계약서 내용 때문이다. 프로 데뷔 후 네 번째 끝내기 홈런으로 이대호는 400만달러 가능성을 확인했다. ‘급’이 다른 메이저리그 강속구에도 밀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불리한 볼카운트에서의 한 방으로 증명했기 때문이다.

2대2로 맞선 연장 10회 말 2사 1루에 주전 1루수 애덤 린드의 대타로 타석에 선 이대호는 0볼 2스트라이크에서 3구째 시속 156㎞ 투심을 왼쪽 담장 밖으로 넘겼다. 5연패 중이던 팀을 수렁에서 건져내는 끝내기 투런포였다. 한국인 메이저리거 최초로 연장 끝내기 홈런을 친 이대호는 시즌 타율 0.231(13타수 3안타)을 기록했다. 3안타 중 2안타가 홈런이다. 이대호는 “예상했던 빠른 공이 들어왔고 배트 중심에 맞았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이대호는 아직은 왼손투수가 나올 때만 기회를 얻는다. 이날 홈런 제물도 왼손 제이크 디크먼이었다. 왼손에 강점을 충분히 선보인 이대호는 16일 뉴욕 양키스 원정부터는 다른 유형의 투수를 상대로도 기회를 늘려갈 것으로 보인다. 린드가 1할에도 못 미치는 타율(0.095)에 허덕이는 것도 근거다. 서비스 감독은 “이대호는 빠른 공에 적응하기 위해 레그킥(타격 전 다리 들기)을 줄이는 등 많은 노력을 했고 이런 성과를 냈다. 빠른 공 적응력을 증명했다”고 밝혔다.

양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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