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의원선거 결과 예상치 못한 여소야대 국회가 탄생하면서 야권에서는 입법 주도에 대한 기대감이 물씬 묻어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겉으로는 “대화와 타협이 중요하고 협치의 정신으로 국회를 운영하겠다”며 낮은 자세를 보이고 있지만 새누리당이 총선 참패로 힘이 빠진 상황에서 20대 국회 원내 제1당을 예약해놓고 있어 기세등등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더구나 이종걸 더민주 원내대표는 제3당인 국민의당을 향해 “형제당”이라며 야권연대를 기정사실처럼 하고 있는 것만 봐도 여소야대의 20대 국회가 야권 중심으로 돌아갈 것을 자신하는 분위기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20대 국회 주도권이 16년 만에 교체된 것은 국민의 선택이었고 야권은 이를 누리고 정국에 적극 활용하는 것이 당연하다. 실제 야 3당은 세월호 사고 2주기를 맞아 세월호특별법 개정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또 국정교과서 폐지를 위해 더민주와 국민의당이 힘을 합친다고 한다. 야권 지지세력의 핵심 요구사항이기 때문에 ‘야대(野大)’가 된 상황에서 이를 무시할 방법도 없다.
하지만 입법 주도권을 넘겨받은 야권에 대한 불안한 시각에서 보면 야당이 한쪽으로 너무 빨리 달려나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기에 충분하다.
지난 2004년 제1당이 된 열린우리당은 곧바로 국가보안법 폐지 시도에 나섰다. 당시 열린우리당은 국보법 폐지를 비롯한 4대 악법 폐지를 당론으로 정하고 한나라당을 강하게 몰아붙였다. 이에 한나라당은 강하게 저항했고 열린우리당 내 온건파는 “무리한 개혁은 안 된다”며 수정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대화와 타협을 위해 절충을 시도한 것이지만 열린우리당 강경파는 자당 온건파를 향해 “당을 떠나라”며 내분을 자초했다.
이후 17대 국회에서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은 전패하며 몰락의 길을 걸었다. 과반 의석의 거대 야당이 소수당으로 쪼그라들고 순식간에 간판도 없이 사라지는 상황을 맞은 것은 지금의 ‘야대’ 상황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야권은 이번 20대 총선 승리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대화와 타협, 협치”라고 말하고 있다. 19대 과반 의석을 무기로 삼아 일방적인 입법을 주도했던 여당에 대한 견제심리로 야당에 표를 몰아줬다는 것이다. 그런데 선거가 끝나기 무섭게 과거 여당이 했듯이 잇따라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해온 세월호법 개정, 국정교과서 폐기 등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입법 주도권을 넘겨받은 야권에 대한 불안한 시선이 여전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의 야권은 오히려 여당과 타협할 수 있는 법안에 대해 먼저 얘기를 꺼내는 게 순서다. 그렇지 않으면 과거 열린우리당이 걸었던 것처럼 야권의 독주가 오히려 내년 대선에서 독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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