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서울 올림픽준비에 여념이 없던 1988년 당시 미국 의회는 전가의 보도로 일컬어지던 무역법안 301조에 ‘슈퍼(super)’라는 단어를 추가한 ‘슈퍼301조’를 새로 통과시켰다. 슈퍼맨·슈퍼스타·슈퍼화요일…, 무엇이든 앞에 슈퍼라는 단어가 붙으면 강력한 힘을 상징하게 마련인데 슈퍼301조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미통상 마찰하면 누구나 슈퍼301조를 떠올릴 정도로 그 힘은 무시무시했다.
슈퍼301조는 외국의 불공정무역 관행에 대한 보복을 규정하고 있는 종합무역법안 301조에 더욱 강력한 제재조항을 담았다. 이를테면 장난감을 덤핑해도 자동차는 물론 다른 어떤 품목의 수입도 제한할 수 있도록 허용한 법이었다.
1980년대 미국은 한국에 대해 걸핏하면 슈퍼301조를 들먹이며 시장 개방을 무차별적으로 요구해왔다. 1982년에 대미(對美) 무역수지가 사상 처음으로 흑자로 돌아선 후 계속 흑자 규모가 불어났기 때문이다. 1990년대 들어 무역수지가 적자로 반전되기도 했지만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심지어 미국에서 사료용으로 사용하는 대구머리를 우리 교민들이 잘 먹더라는 이유로 이 품목에 대한 시장개방을 요구받기도 했다.
최근 ‘환율의 슈퍼301조’로 불리는 미국 BHC법안이 발효되면서 슈퍼301조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 법안을 공동발의한 마이클 베넷, 오린 해치, 톰 카퍼 상원의원의 이름에서 따온 이 법안은 환율조작 의심국으로 지정된 국가에 대해 통상 및 투자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했다. 의심 기준은 △상당한 규모의 경상수지 흑자를 내면서 △대미 무역수지에서도 지속적으로 흑자를 내고 △통화가치를 인위적으로 낮게 유지하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우리나라의 지난해 경상수지 흑자는 1,059억달러로 전년보다 25% 증가했고 대미 무역흑자도 283억달러로 13% 증가했다.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서 사문화되다시피 한 슈퍼301조가 그러잖아도 경제상황이 좋지 않은 마당에 보복 조치 형태로 부활할까 우려된다. /이용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