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다시 경제, 그리고 기업이다] 美 '바이오 사령탑' 2만명인데 韓은 걸음마…인재양성 서둘러야

<3> 신·융복합 산업 키우자

각국 AI 등 자금·인력 쏟아붓는데

"정책 일관성 흐트러진다" 비판에

지난달에야 '바이오특별위' 급조

규제 완화·기업투자 稅혜택 넘어

정부차원서 '신사업 인력' 육성을





홍남기(왼쪽 두번째) 미래창조과학부 제1차관이 지난달 22일 오송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CV센터에서 정부의 바이오 산업 컨트롤 타워인 ‘바이오특별위원회’ 1차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기업과 전문가들은 바이오에서 인공지능(AI)에 이르는 첨단 융복합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정부가 제도적 지원과 고급 인력 양성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연합뉴스홍남기(왼쪽 두번째) 미래창조과학부 제1차관이 지난달 22일 오송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CV센터에서 정부의 바이오 산업 컨트롤 타워인 ‘바이오특별위원회’ 1차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기업과 전문가들은 바이오에서 인공지능(AI)에 이르는 첨단 융복합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정부가 제도적 지원과 고급 인력 양성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은 지난해 4월 바이오산업의 사령탑 역할을 맡을 ‘일본의료연구개발기구(AMED)’를 설립했다. 신약과 의료기기 개발은 물론 희귀·난치병, 전염병 연구까지 도맡아 하는 AMED는 스에마츠 마코토 게이오대 의학부장의 지휘 아래 임직원 300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지난해 예산만도 1,215억엔(약 1조2,676억원) 규모다.

AMED가 모범으로 삼은 미국 국립보건연구원(NIH)의 규모는 더욱 압도적이다. 2만명 이상의 인력을 확보하고 지난해 기준 323억달러(약 36조8,446억원)를 연구개발(R&D) 비용으로 지출했다. 지난해 NIH에서 연구비를 지원받은 미국 내 의료분야 연구자는 약 30만명. 이와 별도로 NIH 자체 연구원 역시 6,000명이 넘는다.


이처럼 해외 각국은 바이오·인공지능(AI) 등 첨단 융복합 신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앞다퉈 거액의 자금과 막대한 인력을 투입하고 있다. 또 기업들의 신산업 투자를 유도할 목적으로 세제 혜택, 규제 해소 같은 제도적 지원도 아끼지 않고 있다. 수조달러대로 성장할 첨단 융복합 신산업을 선점하면서 인류의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한다는 야심 찬 포부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글로벌 바이오 산업 시장만 해도 지난해 말 1조4,000억달러에 달한다. 10년 후인 오는 2024년에는 2조6,000억달러로 커진다.

하지만 이들에 비하면 한국은 걸음마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실정이다. 당장 정부는 바이오 산업을 이끌 컨트롤타워인 ‘바이오특별위원회’도 지난달에야 발족시켰다. 홍남기 미래창조과학부 제1차관이 위원장을 맡은 이 위원회는 민관을 합쳐 20명 남짓한 위원이 참여한다. 미래부와 보건복지부를 비롯해 7개 정부 부처가 바이오 산업 육성에 달려들면서 정책의 일관성이 흐트러진다는 거센 비판을 받자 정부가 급조한 조직이다.


바이오 산업에 투자한 기업들 가운데는 정부의 미적지근한 지원에 대한 불만도 나오고 있다.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장은 지난 2월 열린 ‘바이오의약품 규제 개혁 대토론회’에서 “싱가포르는 법인세가 17%지만 첨단 의학 산업은 15년간 이를 면제해준다”며 “(세제 지원을 다루는) 기획재정부는 바이오 산업 매출에 좀더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했다. 바이오 기업들이 각종 R&D·설비투자에 대해 세제 혜택을 요구하고 있는데 핵심 부처인 기재부가 이를 귀 기울여 듣지 않는다는 비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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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주행차·AI·드론·친환경에너지 같은 여타 첨단 산업들도 정부 지원이 열악하기는 마찬가지다. 산업통상자원부가 확정한 올해 ‘산업기술혁신사업 통합 시행계획’을 보면 산업 전반의 핵심 기술을 확보하고 신산업 기술을 획득하기 위해 정부가 투자하는 R&D 비용은 총 3조4,073억원이다. 3조4,660억원이었던 지난해보다 약 1.7% 감소했다.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면서 신산업을 육성할 목적으로 전국 14개 시·도마다 드론·사물인터넷(IoT) 같은 중점 산업을 지정하고 규제를 풀어주는 규제프리존 특별법은 19대 국회에서 잠자는 형편이다. 한 중소 전기차 제조사 대표는 “국내 전기차 업계는 제대로 된 기술 표준도 아직 없어 중소 업체들은 큰돈이 드는 투자를 망설이고 있다”며 “정부는 해외 각국이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기 위해 얼마나 발 빠르게 움직이는지 제대로 보지 못하는 듯하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들어 정부도 조금씩 신산업 지원 움직임을 보이는 점은 그나마 위안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AI 알파고가 바둑 대결에서 이세돌 9단을 꺾고, 테슬라모터스의 신형 전기차 모델3가 전 세계적인 흥행에 성공하는 등 융복합 신산업들이 본격 성장궤도에 오를 조짐을 보인 덕분이다. 미래부 주도로 조만간 모습을 드러낼 민간기업형 ‘지능정보기술연구소’가 대표적인 사례다. AI 기초기술을 연구하고 산업 전반에 적용할 이 연구소는 정부가 매년 300억원씩 자금을 지원하고 초기 투자 기업인 삼성전자·LG전자·현대자동차·SK텔레콤·KT·네이버·한화생명이 각 30억원씩 별도로 보태는 구조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세제상의 혜택이나 신산업 통합 사령탑을 만드는 것만이 다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첨단 융복합 산업 육성의 열쇠는 기초학문에서 소프트웨어(SW)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전문성을 갖춘 인재인 만큼 정부가 이런 인재를 길러낼 교육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문이다. 장병탁 한국인지과학산업협회장(서울대 교수)은 “바이오든 AI든 신산업에 투자하는 한국 기업들이 가장 목말라 하는 부분이 고급 인재”라며 “실리콘밸리 같은 풍성한 인재의 밭을 만드는 것은 일개 기업이 아닌 바로 정부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이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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