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침 맞은 파란눈의 환자 "판타스틱"…양·한방 협진시대 '성큼'

동양의학학술대회에 서양 의료인 대거 참석

"美암센터 45곳 중 30곳 양·한방 협진…환자 80% 만족

동양 의학도 보험 적용한 독일, 국민 90%가 진료 경험

'양·한방 갈등' 한국,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 허가해야"



동양의학을 미신이나 비과학 정도로 치부한 세계 의료인들과 환자들의 인식이 급속도로 바뀌고 있다.

아시아 국가는 물론 미국·독일 등 서구 의료 선진국에서도 한의약 등의 동양의학이 서양의학이 제공할 수 없는 부문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며 주목받는 추세다. 이 같은 인식과 추세의 변화를 방증하듯 지난 15∼17일 일본 오키나와에 위치한 오키나와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18회 국제동양의학학술대회(ICOM)에는 수많은 서양의 의료인과 관계자가 모여들었다. ‘미국에서의 전통의학을 통합한 암 환자 치료’ ‘독일의학침술학회(DAGFA)를 통한 독일 침술의 발전’을 주제로 각각 발표한 뉴욕 메모리얼슬론케터링암센터의 게리 덩 박사와 클라우스 함브레히트(사진) 독일 중의학협회 부회장을 만나 서구의 양·한방 협진 현황 등에 대해 들어봤다.




클라우스 함브레히트 독일 중의학협회 부회장클라우스 함브레히트 독일 중의학협회 부회장


◇침술·한약 치료받은 환자 10명 중 8∼9명은 만족=함브레히트 부회장은 “과거 독일에서 침술·한약 등은 비과학적이거나 근거가 없다고 생각하는 측면이 있었다”며 “하지만 세계보건기구(WHO) 통계에 따르면 독일 국민의 90%가 동양의학 의료 서비스를 이용한 적이 있고 침술·한약 등의 효능에도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는 등 최근 20여년간 독일 국민의 인식이 굉장히 많이 바뀌었다”고 강조했다. 미국과 영국의 경우 국민의 동양의학 경험 비중이 각각 40%, 20%에 달한다.

그는 독일에서 동양의학이 대중화하게 된 계기로 보험 적용과 침술의 공인을 꼽았다. 함브레히트 부회장은 “1990년대에 들어와 침술의 효과가 입소문을 타고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며 “제도 측면에서는 허리와 무릎 등의 질환 치료에 대해 2006년부터 보험이 적용된 것과 독일의사협회가 2013년 침의학을 지속적 의료교육 과정으로 인정한 것이 독일 동양의학 확산의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됐고 제일 큰 규모의 암센터에서 통합 의학 서비스 부분 주임을 맡은 덩 박사는 동양의학에 대한 서구인의 인식 변화를 사례를 통해 설명했다. 그는 “우리 병원에서는 구강암 환자를 돌볼 때 양방의사와 한방의사가 협진하고 있는데 10년 전쯤 새로 온 양방의사가 옆에서 침을 놓으려는 한방의사에게 ‘지금 내 환자에게 뭐하는 거냐’며 그를 내쫓는 일도 있었었다”며 “지금은 수많은 임상 결과가 누적돼 동양의학에 대한 인식이 매우 좋아진 상태”라고 말했다. 민간 보험의 적용 범위가 대체로 커버하지 못하는 한방 치료를 계속 받으러 오는 환자 수를 고려하면 전체 환자의 약 80%가 양·한방 협진에 만족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게리 덩 뉴욕 메모리얼 슬론케터링 암센터 박사게리 덩 뉴욕 메모리얼 슬론케터링 암센터 박사



◇동양의학으로만 가능한 의료 서비스 존재=함브레히트 부회장은 독일의 의과대학에서 내과를 전공했음에도 현재 베를린에서 20년째 중의학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 그에게 동양의학에 뛰어들게 된 계기를 물었다. 함브레히트 부회장은 “20대 초반 어깨가 아파 병원에 갔는데 그곳에서는 어깨 통증의 원인조차도 찾을 수 없었다”며 “아는 사람의 소개로 어깨에 침을 맞았는데 거짓말처럼 어깨가 다시는 아프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어 그는 “내 클리닉을 방문하는 환자들의 70% 정도는 통증 질환자나 뼈에 문제가 있는 환자들”이라며 “그들 중에는 ‘당신이 내 마지막 희망이다’라며 찾아오는 환자들도 있다”며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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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 박사는 동양의학만이 할 수 있는 의료 서비스에 대해 더욱 구체적으로 얘기했다. 그는 “구강암·후두암 환자들은 항암치료를 받으면 침샘이 마르는 증상이 나타난다”며 “양방으로는 치료할 방법이 없지만 침을 맞으면 이 증상이 완화된다”고 말했다. 이어 “유방암 환자가 항암치료와 유방절제술을 병행해 받으면 호르몬 때문에 체중이 급격히 늘고 팔이나 어깨를 한동안 못 쓰는 경우가 많다”며 “이럴 때 양방의사는 딱히 환자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지만 한의사들은 침으로 통증을 완화하고 한약으로 환자의 체중과 컨디션을 조절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덩 박사는 80세 폐암 환자의 사례도 소개했다. 그는 “항암치료를 받으면 속이 울렁거리거나 신경계가 손상되기도 한다”며 “환자가 고령인 점과 부작용 등을 고려해 항암치료를 하지 않고 한약으로만 치료했는데 3년 동안 암의 크기가 자라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동양·서양 의학, 경쟁이 아닌 보완 관계로 발전해야=2년마다 한국을 방문하고 있는 덩 박사는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 의료계가 양방의사·한의사 간 갈등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의사들은 동양의학만이 할 수 있는 분야에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양방의사가 내 것을 뺏어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서로가 잘하는 영역의 의료 서비스를 전문적으로 펼치면 자연스럽게 환자 치료의 선순환 구조가 형성된다. 경쟁이 아닌 보완 관계가 돼야 한다. 미국 암센터 45곳 중 30곳은 양·한방 협진이 이뤄지고 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는 양방의사와 한방의사가 함께 회진을 돕는다.”

함브레히트 부회장은 한의사들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둘러싸고 한국에서 일고 있는 논란과 관련해서는 양방의사들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한의사들에게 의료기기를 못 쓰게 하는 것은 멍청한 일”이라며 “2014년 경희대 한방병원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양·한방 협진이 이상적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한의사들의 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해주고 다른 나라들이 부러워하고 있는 경희대 한방병원 의료 서비스와 같은 모델이 확산됐으면 한다”고 힘줘 말했다.

덩 박사는 교육 프로그램 도입이 대안이 되지 않겠느냐는 견해를 내놓았다. 그는 “한국은 의사 자격제도가 양방과 한방으로 나뉘어 있지만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을 바로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안전성이 우려된다면 한의사들이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한 뒤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키나와=임지훈기자 jhlim@sedaily.com

임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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