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엔화 가격이 지난주에만 달러 대비 2.5%나 급락하면서 추가 하락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일본은행(BOJ)이 추가 통화 완화 조치를 내놓는 반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매파적 기조로 돌아서면서 올 2·4분기에 엔·달러 환율이 120엔선을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지난 22일(현지시간) 뉴욕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2%나 급등(엔화 가치 급락)한 111.79엔으로 마감했다. 올 들어 이달 4일까지 엔화 가치가 달러화 대비 9%나 상승한 것에 비해 시장 분위기가 급변한 것이다. 엔화 가치 하락은 BOJ가 수출 확대와 디플레이션 탈출을 위해 오는 27~28일 통화정책 회의에서 시중은행에 마이너스 금리 대출 도입, 자산 매입 규모 확대 등 추가 양적완화를 도입할 것이라는 전망이 커졌기 때문이다.
블룸버그가 전문가 4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3명은 추가 부양책을 예상했다. 15일 주요20개국(G20) 회의에서 일본이 외환시장 직접 개입을 정당화하려다 미국의 강력한 비판에 막혀 실패하자 양적완화를 통한 간접적인 엔화 약세 유도로 정책 방향을 틀었다는 것이다. 구마모토현 등의 연쇄 지진도 BOJ에 통화정책 공간을 열어주고 있다. 지진 여파에 제조업 생산이 둔화되고 소비심리가 냉각될 경우 미국도 일본의 양적완화를 반대할 명분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의 경우 제조업·수출 둔화에도 강한 노동시장 회복세에 연준의 긴축 행보가 빨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6~27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에릭 로젠그렌 보스턴 연방준비은행 총재 등 3명의 지역 총재들이 기준금리 인상을 지지할 수 있다”고 전했다. 물론 4월 금리 인상 가능성은 아주 낮지만 예상보다 강한 매파적 신호가 나올 경우 달러화 강세가 불가피하다. 또 미국의 경기 회복세, 국제유가 회복에 따른 물가 상승 압박이 커지면서 6월 금리 인상이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이처럼 미일 간 통화정책 디커플링(비동조화) 가속화가 전망되면서 추가적인 엔화 약세를 내다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UBS그룹의 제임스 퍼셀 자산운용전략가는 “엔저가 시장 컨센서스”라며 “일본이 추가적인 부양책을 내놓으면 엔화 가치가 다음 6개월 안에 120엔으로 하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탠다드차타드는 엔·달러 환율이 2·4분기에 120엔, 오는 3·4분기에는 125엔까지 오를 것으로 분석했다.
블룸버그가 조사한 월가 투자은행(IB)들의 중기 엔·달러 환율 전망치는 113엔 정도지만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다. 투기세력들도 엔저 지속에 베팅하고 있다. 현재 엔화를 팔고 달러화를 살 수 있는 일주일짜리 옵션 상품을 매입하려면 1.4%포인트의 프리미엄을 지불해야 한다. 엔화 매도세가 매수세를 넘어서기는 올 1월 이후 처음이다.
다만 BOJ가 이달 양적완화를 단행할 수 있을지에 대해 아직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이미 마이너스 금리에 은퇴자 등의 이자 소득이 줄면서 오히려 소비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지적이 많고 은행들도 타격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또 5월 말 일본에서 주요7개국(G7) 회의가 개최된다는 점이 BOJ에 부담 요인이다. 안방에서 미국 등이 또다시 엔저 유도에 공개적인 불만을 제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뉴욕=최형욱특파원 choihu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