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정읍 시골태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어릴적 그림과 만화에 빠져 있었던 덕분에 내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확실히 깨닫고 있었다”며 “자기 적성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꿈을 이루는 추진력이 된다”고 말했다.
홍익대 광고디자인학과를 졸업한 그는 국내 한 광고 영상업체에 들어갔지만 1997년 외환위기로 회사가 도산하자 소니 등이 설립한 일본 드림픽쳐스(DPS)가 한국인 직원을 뽑는 공개채용에 도전했다. 이 감독은 당시 일본어를 몰라 ‘설마 채용이 되겠어’라는 심정으로 통역원에게 “날 뽑지 않는다면 귀사가 큰 손해를 보는 셈”이라며 당당하게 인터뷰해 합격한 일화를 소개했다.
하지만 일본에서도 회사가 해체되면서 이 감독은 아무 연고도 없는 미국행을 결심했다. 항상 꿈꿔왔던 미국땅이었지만 취업의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이 감독은 자신의 작품 데모영상을 할리우드 영상기술업체 면접 관계자들에게 서툰 영어실력으로 수백번 반복해 소개해야만 했다. 그리고 2003년 드디어 ILM에 인턴으로 입사했다. 그는 “10년 경력을 인정받지 못했지만 꿈을 이루는데 큰 의미가 없었다”며 “신입으로 입사해 첫 작품인 캐리비언 해적1편 특수효과 작업을 성공리에 마무리한 후 6개월만에 책임자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영상그래픽의 크리쳐셋업(Creature Setup) 분야를 담당하고 있다. 영화 캐릭터의 머리카락, 피부, 근육 등이 실제처럼 느끼도록 생동감 있는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몇초 영상을 위해 수많은 자본과 인력이 투입된다. 가령 이 감독은 영화 아바타에서 나무가 쓰러져 파괴되는 2.5초(75프레임) 영상의 특수효과를 만드는데 2개월반 동안 매달렸다. 그는 “할리우드처럼 거대자본이 들어가는 영화를 우리나라가 꼭 만들 필요는 없다”며 “우리 나름대로 시장규모에 맞는 좋은 영화에 특수효과 기술을 계속 적용한다면 앞으로 시장은 커지고 기회도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청년들이 조급하게 취업에 나서기보다 한 분야에서 자기 능력을 최대한 끌어올릴 것을 조언했다. 대학졸업 후 곧바로 대기업 입사를 목표로 잡는 것도 경계했다. 그는 “실력을 충분히 쌓은 후 크게 도약하기 위해 가는 곳이 대기업”이라며 “급변하는 사업환경에 맞춰 대기업들도 새로운 분야에서 성과를 이룬 인재를 선호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ILM 입사 13년째인 김 감독. 월급 50만원 받는 국내 광고제작사 인턴에서 연봉이 수억원에 이르는 글로벌 디지털영상회사의 책임자가 됐지만 도전을 그만 둘 생각은 없다. 그는 “과거 꿈꿨던 직장과 일이 어느새 일상이 되고 말았다”며 “이제 익숙한 것을 포기하고 새로운 분야와 일을 찾아 나설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박현욱기자 hwpark@sed.co.kr